[윤영훈의 컬처 토크] 진정한 ‘어버이’를 위한 새로운 실버문화

입력 2016-05-13 19:11 수정 2016-05-13 20:52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지난주 어버이 주일을 맞아 교회마다 어르신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소설가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빌어 표현하자면, ‘어버이,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떨리는 말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부모님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가히 어버이 수난 시대라 할만하다. 최근의 어이없는 자녀 학대 사건들은 어버이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또한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체의 자금 스캔들과 지난 몇 년 동안 보인 행보는 어버이란 단어 자체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단지 보수적 정치관을 주장해서만은 아니다. 젊은 층이 보기엔 이 분들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스런 ‘노인네’ 이미지를 보여준 때문이다. 더욱이 어버이연합을 지원한 통로로 기독교 선교회 이름이 거명된 것은 어버이연합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기독교계로 향할까 염려스럽게 만든다. 어버이는 절대 정치적 이념을 위한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된다.

성경에서는 자녀들과 아랫사람들의 도리뿐 아니라 부모와 연장자의 덕목을 강조한다. 바로 세대 간 양 방향의 존중과 예의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작년에 개봉해 화제가 되었던 영화 ‘인턴’이다. 그 영화에서 은퇴한 시니어 로버트 드니로는 젊은이들에게 결여된 어른의 품격과 매너를 지키며 어린 CEO와 직원을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존경받는 어른의 최고 덕목은 오랜 ‘경험’보다는 그분들의 ‘매너’이다.

19세기는 어린이가, 20세기에는 여성이, 그리고 21세기에는 노인의 가치가 재발견된다고 한다. 교회에서 미래와 비전을 말할 때 항상 청년세대를 주목하지만, 난 미래교회의 모습은 오히려 노인들의 교회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100세 인생’이란 노래나 ‘호모 헌드래드’란 용어처럼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현실화된 고령화 시대를 잘 준비해야 한다. 단지 건강이나 노후대책의 경제적 차원만이 아니라 정신적 영역이 더 중요하다. 문화, 인문, 자기계발 등의 용어와 프로그램은 청년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선 노년을 ‘문제’가 아니라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 요엘서 2장은 너희 노인들이 꿈(Vision)을 꾼다고 말씀한다. 교회는 노인이 여전히 꿈꾸고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며 자신의 매력을 가꾸도록 존재론적인 인식전환과 이를 위한 구체적 학습과 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새로운 실버 사역은 단지 노인을 공경하고 돌보는 복지 차원이 아니라, 이분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선교와 사역에 참여하는 새로운 모델을 요청한다. 어린이나 청년 사역 못지않게 앞으로는 노인 전문 문화 사역자의 양성도 시급하다.

교회 안에서 노년층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빛나는 조연의 역할과 다음 세대를 세우는 어른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송해와 이순재 같은 연기자를 보라. 그분들은 오히려 노년에 더 사랑받는다. 74세의 미 대통령 후보 버니 샌더스에게 보낸 젊은 세대의 환호를 주목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말에 경청하고 격려하며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에서 항상 웃으며 거침없이 농담하는 어르신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혜는 유머와 함께 흘러야 한다.

성경은 모세가 죽을 때에도 “눈이 흐려지지 않았다(신 34:7)”고 기록되어 있다.

노인이 여전히 총명함을 유지할 수 있는 학습 프로그램, 여전히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섬길 수 있는 봉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윤영훈 <빅퍼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