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에 방영된 KBS 2TV 드라마 '퍼펙트 센스'는 시청자들로부터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력을 잃어가는 여중생과 시각장애 교사의 우정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극중 시각장애 교사 역을 맡은 걸그룹 '소녀시대'의 수영이 몰입도 높은 연기를 선보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드라마에 인간애가 잘 묻어났다.
드라마 총괄 책임자인 김경선(39) PD가 의도한 대로 '진정성'이 통했다. 김 PD가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방영까지 기도로 준비한 덕분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것은 실제 그의 아버지가 1급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2007년 불의의 사고로 가슴 아래 부분이 마비됐다. 사고 당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최근에야 휠체어를 탈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
드라마를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진심을 담아내고 싶었던 김 PD.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PD는 아버지의 사고 후 찾아온 변화의 시간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부모의 실족은 곧 나의 실족”
“결혼 4개월 뒤 아버지가 실족을 하셨어요. 술을 드신 상태에서 뚝섬유원지 난간에서 떨어져 목이 꺾이셨어요. 신경이 손상됐다는데 그 순간엔 믿기지 않았어요.”
충격에 빠진 김 PD는 ‘아, 내가 이제 벌을 받는구나!’란 생각이 스쳤다. 당시 김 PD는 영화 일에 빠져 있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2년 동안 주일 예배를 지키지 않았다. 당연히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회 반주자로 봉사하던 일도 등한시했다.
“그때 아버지랑 동생도 사이가 별로 안 좋았고, 부모님 사이도 좋지 않았죠. 나 스스로도 행복한 가족이란 생각을 못했어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랐던 거죠.”
김 PD는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신경외과 전문의를 수소문했다. 알고지내던 김정아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손범수 아나운서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경황이 없었던 때에 주위에 문자를 보냈는데 두 분이 연락을 주셨다”며 “지금도 너무 감사하다. 그때 두 분이 그 분야의 전문의를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이만큼 회복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를 입원시킨 후 병원 내 교회를 찾아갔다. 2년 만이었다. 예배당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잘못했다고 울면서 기도하는데 그때 예수님이 저를 안아주셨어요. 내가 잘못해서 벌을 받은 게 아니라고 해주셨어요. 예수님도 나만큼 아파하셨고 이 일이 생기지 않기를 나만큼 원하셨다고 함께 울어주셨죠.”
그 후 궁금증이 쏟아졌다. ‘기적이 뭔가요’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아빠는 기적이 필요해요’ ‘기도가 안 이루어지면 어떡하죠?’
그때마다 예수님은 즉각 답을 주셨다. 예수님은 ‘지금 기적은 너희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서 걷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가족들이 모이고 서로 사랑하는 게 기적이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위가 눈물로 기도하는 게 기적이고 아침잠 많은 네가 새벽기도를 하는 게 기적이고 동생이 매일 병원에서 간호하며 잠드는 게 기적’이라고 하셨다.
김 PD는 반주자로 다시 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길을 느꼈다.
“기도하는데 좋은 옷을 입고 준비하고 기다리라는 음성을 주셨어요. 아버지 사고가 난 그 주일이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주일 예배 10분 전에 가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방송이 나왔어요. 반주를 할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원목실로 오라는 내용이었지요.”
김 PD는 “원목실에 가니 기존의 반주자가 접촉사고가 나서 예배에 늦게 됐다”며 임시로 반주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그때 하나님이 이것 때문에 준비하고 오라고 하셨구나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2년 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고 무사히 반주를 마쳤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셨고 반주자로 섬기는 나를 기뻐하셨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김 PD는 일련의 일을 세브란스병원 원목이었던 고영범 목사에게 전했다. 그러자 고 목사는 자신이 담임목사로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 반주자로 섬길 것을 제안했다. 김 PD는 주저 없이 순종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대문구 연대동문길에 있는 태평양교회에서 반주하고 있다.
“반주자와 프로듀서, 뒷바라지 역할이 제게 딱”
9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김 PD는 두 가지 일을 다 하고 있다. 평일엔 프로듀서, 주일엔 반주자로, 그리고 두 가지 일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뒤에서 보살피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역할이 적성에 딱 맞는다”고 했다.
그는 “반주자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합창을 하면 똑같은 곡을 수십 번 치면서 연습이 끝날 때까지 함께한다. 튀어서도 안 되고 보이지 않는 곳에 등지고 있다. 그렇다고 틀리면 안 된다. 틀리면 바로 티가 난다. 찬양단이 아름다운 화음을 낼 때까지 티 안 나게 잘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듀서도 마찬가지다. 건국대 법대 4학년 재학 당시 우연히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졸업 작품에 출연한 인연으로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 당시 그는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지만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 그 뒤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이 적성에 맞았다. 이후 그는 한석규 주연의 영화 ‘미스터 주부 퀴즈왕’(2005)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영화 ‘레디액션 청춘’ ‘흑산도’ 등에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김 PD는 프로듀서가 하는 일에 대해 “배우와 감독은 드러나지만 (프로듀서는) 감춰진 사람”이라며 “반주자를 하면서 음악적 감수성이 자랐지만 가장 필요한 뒷바라지 근성을 하나님이 훈련시켜주셨던 것 같다”고 했다. 뒷바라지를 하는 프로듀서와 반주자의 삶이 매력적이라며 즐거워했다. 또 “둘 다 티는 안 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며 “반주를 할 때는 하나님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칭찬해주시는 듯하다. 프로듀서를 하면서는 작품이 잘 진행되고 잘 마무리되면 스스로 만족감이 크다”고 했다.
김 PD는 두 역할 외에도 여덟 살 딸을 둔 엄마, 남편의 아내로 가정에서도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남편은 영화제작사 인벤트스톤 나경찬(44) 대표다. “욕심이 많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욕심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는 게 최고인 듯해요. 더디 이끄시면 더디게, 쉬어갈 때면 쉬어가는 거죠.”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
기적이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걷는 것? 가족이 다시 모이고 기도하는 것
입력 2016-05-13 18:47 수정 2016-05-13 2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