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형 ‘국가 R&D’ 대수술… 세계 시장 선도 나선다

입력 2016-05-13 04:00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서영희 기자

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혁신에 팔을 걷어붙였다. ‘확실한 분업’을 혁신의 키워드로 삼았다. 대학과 기업, 정부 출연연구소 간 중복되는 여러 연구를 교통정리 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기초연구는 대학에서, 원천기술 연구는 출연연구소에서, 상용화 연구는 기업에서 맡아 진행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정부 R&D 혁신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요즘 일본의 엔저 공세와 중국의 기술 발전으로 신(新)넛크래커(nutcracker·호두 까는 도구에 끼인 호두 신세)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서 “국가 경쟁력 확보와 세계시장 선도를 위해 우리의 추격형 R&D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의 질(質)’로 성과 평가=정부가 R&D 현황을 진단하면서 가장 큰 문제로 받아들인 건 대학, 기업, 연구소가 정부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다 보니 차별화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전략회의는 대학에 ‘기초연구와 인력 양성의 기지’라는 임무를 부여키로 했다. 상용화 연구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는 대신 기초연구 지원을 늘린다.

눈에 띄는 건 논문 수 등 양적 성과가 아닌 연구의 질을 중심으로 성과 평가를 할 계획이다. 교수 업적 평가에도 논문 건수 사용을 원칙적으로 철폐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학 연구에서 논문이 아닌 다른 객관적 평가기준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정성평가는 학계 내에서 끼리끼리 이뤄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엄정한 평가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학에는 기초연구 지원 확대와 함께 ‘신진연구자 지원’이 이뤄진다. 실력 있는 젊은 연구자에게 최대 5년간 연 3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4년제 대학의 40세 미만 이공대 전임교수가 정부 R&D 과제를 받는 비율을 현재 60%에서 80%로 높일 방침이다.

◇‘미래 먹거리’ 개발은 정부 출연연구소에서=정부 출연연구소에는 ‘중장기 원천기술 개발’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자잘한 단기 연구 대신 5년 이상, 5억원 이상 규모의 연구를 해 앞으로 우리나라의 먹거리가 될 원천기술을 개발하라는 취지다. 출연연구소는 기관별로 5개 안팎의 핵심 연구 분야를 선정하고 여기에 연구비를 70% 이상 써야 한다. 과학기술전략회의는 각 연구소의 출연금 가운데 인건비 비중을 2018년까지 70%(현재는 60%)로 높이기로 했다. 출연연구소들이 인건비 확보를 위해 정부 부처 연구과제 수주에 몰두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기업은 당장 산업에서 써먹을 수 있는 상용화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중소기업에는 성장단계별로 맞춤형 지원을 실시한다. 중견기업에는 사후에라도 우수한 성과를 낸 연구에 R&D자금을 지급하는 ‘후불형 지원’을 제공한다. 대기업의 경우 직접적 R&D 지원을 줄이되 기업에서 먼저 제안하면 정부가 호응하는 ‘역매칭’ 방식을 도입한다.

권기석 민태원 남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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