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친박, 새누리당 전면에 나설 자격 없다

입력 2016-05-12 19:40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가 가당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13총선 참패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특유의 오만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한국 보수 진영의 최대 위기를 자초한데 대한 질타가 당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친박계의 총선 패배 책임론에 대해 “그렇게 덤탱이(덤터기의 사투리) 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친박, 비박 다 책임 있는 거다. 계파 한쪽으로 어느 일방만 책임을 묻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친박 2선 후퇴에는 “친박계가 (전당대회에) 나와선 안 된다?”라고 반문하고 재차 “‘친박=책임’ 이런 식의 등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라디오에 출연한 친박계 핵심 홍문종 의원은 자신의 당권 도전과 관련해 “상당히 많은 고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또 다른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의 당권 도전에 대해서도 “정치라는 건 생물이기 때문에 항상 변하는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놨다. 새누리당이 과반 1당에서 2당으로 쪼그라들자 국회의장을 향한 미련을 버렸다고 했던 서청원 의원이 ‘박근혜정부의 안정적 마무리’를 명분으로 생각을 바꿨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쯤 되면 친박계 준동은 가히 조직적이다.

총선 직후 고개를 들지 못했던 친박이 전면에 나서려는 건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 이후부터다. 박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정권 심판이 아닌 국회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여소야대 정국보다 당·청 간 불협화음이 더 힘들다면서 19대 국회에서의 여당과 청와대 간 소통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 뒤 친박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고, 새누리당은 11일 수습책으로 관리형 비상대책위원회와 별도 혁신위원회 구성안을 내놨다.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친박계의 주장이 관철된 것으로, 비대위원장은 정 원내대표가 겸직키로 했다. 야권 분열로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무참히 진 여당이 안정을 택한다면 이를 제대로 된 해법으로 받아들일 국민이 몇이나 될까. 당은 침몰 직전인데 뭘 안정시키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당장 비박 측에서 “수습책에 절망감을 느낀다. 누가 보더라도 새누리당은 반성의 의지가 없다”(하태경 의원), “지금 이대로의 평온함과 안락함이 지속된다면 나중에는 손도 못 써보고 가라앉게 될 것이다”(김영우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외부의 시각은 더 냉혹하다. 새누리당이 이미 정권재창출은 포기하고 야당으로 남기로 작정한 것 아니냐는 조롱마저 있다. 지금처럼 친박이 정신을 못 차린다면 내년 대선을 치러보지도 못하고 당이 공중분해되는 일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