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소설가 정유정이 전작 ‘28’ 이후 3년 만에 신작 장편 ‘종의 기원’(은행나무)을 들고 돌아왔다. ‘7년만의 밤’(40만부), ‘28’(20만부), ‘내 심장을 쏴라’(20만부) 등 내놓은 소설마다 히트를 쳤던 그다. 그만큼 신작 ‘종의 기원’에 거는 독자의 기대도 크다. ‘7년 만의 밤’ ‘28’ 등 작품마다 매번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했던 그는 이번 소설에서도 악의 근원을 파고든다. 주인공은 평범해 보이는 26세 청년 유진이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발작 증세가 있고, 그래서 정신과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주는 약을 매일 먹는다는 점이다.
어느 날 유진은 전화 벨 소리와 함께 진동하는 피 냄새 때문에 잠에서 깬다. 그는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며칠간 끊은 상태였다. 늘 그랬듯이 약을 끊자 기운이 넘쳤고, 그래서 전날 밤 그의 표현대로 ‘개병’이 도져 외출을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어머니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방안은 피투성이가 돼 있고 자신은 피범벅이 돼 있다. 이어 거실에서 끔찍하게 살해돼 누워 있는 어머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껏 찾아낸 단서와 정황 증거들은 한결 같이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어머니 살해 용의자)는 ‘나’라고. (중략) ‘그’가 ‘나’라면 왜?”(50쪽)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추적해간다.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장치들은 있다. ‘형’은 어머니가 사고로 죽은 형을 닮았다며 양자로 들인 중학교 친구 해진이다. 어머니는 그 해진을 편애한다. 또 26세 청년이 됐는데도 9시 이후 외출을 금지하는 등 자신에게 규칙, 규칙만을 강조하고….
독자여. 이런 푸념이 주인공 유진의 입장에서 주변 사람을 해석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시무시하다. 어릴 때 익사 사고로 죽은 형, 그 형을 구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역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어머니의 주검을 발견한 그날 알게 된 또 다른 여성의 시신….
유진이 스스로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형식 자체가 신선하다. 정유정에게 미스터리 장르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에 버금가는 놀라운 상상력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는 찬사가 따르는 이유다.
작가는 왜 악인에 천착하는 것일까. 책의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은 이렇다.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리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 있다.” 악인도 처음부터 괴물로 태어난 게 아니고, 그런 면에서 유진이라는 악인의 내면을 뒤집어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정유정은 과거 멀쩡하게 생긴 스물 세 살 청년이 부모를 살해해 세상을 경악시킨 사건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이야기한다. 그 때 작가는 ‘사이코패스’ 개념을 알게 됐다. 작가는 “책을 편 독자들에게 이 책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여정이 될지 모르겠다”며 “그렇기는 하나 이 이야기 자체가 예방주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종의 기원] 우리는 모두 악인일까… 악의 근원 파헤친다
입력 2016-05-12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