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싫지만, 딱 1년 전 대한민국은 중동 사막의 정체모를 역병(疫病)에 속절없이 뚫렸다. 지난해 5월 20일 국내에 들어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은 두 달 넘게 유행하며 큰 생채기를 남겼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86명의 감염자를 냈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최대 메르스 유행국이라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큰 사회적 혼란을 겪었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도 입었다.
신종 감염병에 홍역을 치른 지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상처는 아물고 있을까. 초동대응을 비롯해 허점투성이였던 방역시스템은 잘 정비되고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가. 메르스에 걸렸다 완치된 사람과 가족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심각한 폐손상을 입어 폐이식을 받은 일부는 병원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또 완치자 상당수는 불안과 우울, 분노, 슬픔, 죄책감 같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겪고 있다.
다수 메르스 감염자를 냈거나 환자가 거쳐 갔던 의료기관들은 또 어떤가. ‘메르스 숙주 병원’이란 오명을 썼던 삼성서울병원은 응급실 폐쇄 등으로 환자가 급감해 1000억원 이상 손실을 입었고 신규 내원 환자 수는 아직 메르스 전 100%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출발지였던 평택성모병원이나 7명의 환자가 발생한 강동경희대병원 등 다른 의료기관들도 대체로 정상화는 됐지만 곳곳에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28일 사실상 메르스 종식 선언 이후 정부는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등의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을 내놨다. 또 감염병 관련 법령 정비, 감염 관리를 위한 정책 개발, 전문인력 및 재원 확보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시행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허술했던 방역체계 수술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다만 감염병 관리시스템을 고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들이 눈에 띈다.
정부는 거액을 들여 감염병 유행국 여행 이력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스마트검역시스템’을 구축했지만 막상 지카바이러스 발생 국가에 대한 자료 입력이 안 되는 허점을 또 드러냈다. 의료 현장에서 활용에 대한 교육·홍보가 충분치 않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의료기관에서 메르스나 지카바이러스 감염 의심환자 발견 후 보건소를 통한 역학조사,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이송 등 일련의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다. 한 감염내과 의사는 “휴일이나 야간에 보건소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확진검사의 시행, 격리 이송에 대한 결정이 늦어져 환자를 몇 시간 동안 병원에 붙잡아 두느라 진땀을 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역학조사관 확충과 관련해선 정부가 단기 계약직 형태의 채용조건을 고집하고 있는 데다 급여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아 ‘가급 역학조사관’의 경우 지원 미달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병원 방문 문화는 단시간에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일부 의료기관의 경우 집단 병문안을 제한하지 못하고 면회시간 준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나 병원협회 등의 국민인식 개선 캠페인은 일회용 행사로 끝이 났다. 응급실 과밀화 해결책도 기존 정책을 일부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메르스 사태 후 1년의 시간이 우리나라 방역체계와 보건의료시스템을 충분히 개선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은 맞다. 하지만 개선 과정에서의 오류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등 정부의 고민과 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세상만사-민태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1년
입력 2016-05-12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