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1월 6일,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또 2월 7일 미사일 발사, 실험이 거듭될수록 핵의 크기는 소형화되고 미사일 기술은 고도화되고 있다.
북한 방송은 곧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유엔은 지난 3월 3일, 북한의 행동을 유엔헌장 9장 제39조가 규정한 ‘국제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해 결의 2270호를 채택했다. 그 내용은 북한의 대외교역을 차단하고 금융거래를 중단시켜 핵개발에 이용될 자금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에 더해 미국 의회는 자체 대북 제재안을 마련해 북한과 교역하는 제3국을 제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북한에 경제 원조를 하는 중국을 통제하려는 목적이다.
북한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가 각각 자위 수단이며 국제법이 허용한 우주이용권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말대로라면 안보리의 제재안 마련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닐까.
북한은 국제적 비난이 있을 때마다 핵은 자국의 자위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주변국의 봉쇄에 반발할 때에 미국과 남한에 핵공격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두 개의 얼굴을 보이고 있다.
마주보고 있는 상대방을 향해 돌진하는 두 사람을 가상한 게임을 생각해보자. 크게 세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다. 첫째, 달려오는 두 사람 중 한 쪽이 겁을 집어 먹어 피하고 한쪽은 직진할 경우 도망자는 겁쟁이가 되고 다른 한쪽은 승리자가 된다.
둘째, 양쪽 모두 끝까지 돌진하면 충돌해 모두 패배한다. 마지막으로 만약 두 사람 모두 피하게 되면 모두 겁쟁이가 되어 어떤 피해도 없다. 이 게임에 북한과 미국을 게임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실험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될까.
이 실험에서 북한은 미국의 정보를 모르고 미국은 북한의 내부사정을 다 아는 전능자의 지위에 있다는 가정을 두도록 하자. 공격의 선택권을 가진 미국과는 달리 북한은 미국의 선택을 알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공격할 경우와 공격하지 않을 경우 모두 대비해야 하므로 공격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은 정보능력이 우위에 있으나 북한의 선택에 순응할 수밖에 없으므로 역설적으로 게임의 최종적인 승자는 북한이 된다. 핵 공격을 경고하는 북한의 언급과 가상실험에 나타난 위험성 등을 볼 때 북한의 핵 보유는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북핵문제를 볼 때마다 남북간의 통일만이 종국적이고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한반도의 상황은 성경에서 전개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간에 일어난 분단과 갈등을 주목하게 만든다. 솔로몬의 죄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된 이스라엘이(왕상 12:11) 후일 에스겔의 예언대로 둘이 하나가 된 것처럼(겔 37:15∼23) 우리에게도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1981년 동독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 기도회는 10여명이 참가하는 작은 기도회로 시작했다. 그 월요기도회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에도 촛불기도로 활활 타올랐다. 그 역사현장을 되새겨본다면 은혜의 단초는 바로 우리의 작은 기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박상흠 변호사 <동아대 법무감사실 법무팀장>
[박상흠 변호사의 법률 속 성경 이야기] 북핵의 국제법적 접근
입력 2016-05-1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