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배영만 <10> 커닝으로 받아온 성적표… 주님 믿고 나니 후회

입력 2016-05-12 19:09
2004년 2월 우여곡절 끝에 서울 서대문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목회연구원을 졸업한 필자.

이번 ‘역경의 열매’ 연재를 통해 고백하고 회개할 게 있다. 나는 학창시절에 커닝을 잘했다.

주위 친구들도 커닝을 많이 해 별 죄책감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된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그것은 분명 죄라고 생각한다.

커닝 버릇은 중학교 때 시작됐다. 머리가 좋지 않은 데다 놀기를 좋아해 학교 성적이 바닥을 맴돌았다. 생각해낸 게 커닝이었다. 시력이 좋아 가능했던 일이다. 커닝 덕분(?)에 학교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예비고사 시험은 잘 보지 못했다. 커닝을 할 수 없는 책상 배열이었다.

예비고사 성적이 나온 날, 아버지는 C대학 원서를 사가지고 오셨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 “아버지, 저 공부 못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니다. 너는 날 닮아서 머리가 비상하고 좋다. 집안 형편은 비록 어렵지만 너를 꼭 대학 공부를 시키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아이구 맙소사. 그렇게 나를 믿고 말씀하시는 아버지께 차마 커닝으로 학교 성적을 유지해 왔다고 말씀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응시한 학과는 25명 정원에 5대 1의 경쟁률이었다. “어떻게 합격하지? 실력이 안 되는데….”

그런데 정말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시험을 보는데, 내 책상 줄이 집단커닝 줄이었던 것이다. 앞사람이 매시간 뒤로 커닝 페이퍼를 건넸다. 나는 그 커닝 페이퍼를 보고 답안을 작성했고 합격했다.

사필귀정일까. 재학 내내 성적은 좋지 않았다. 나중에 옛 선배를 찾는 TV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했을 때 대학교 직원이 배영만의 성적은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성적표를 손으로 가린 해프닝도 있었다.

정작 문제는 졸업하고 터졌다. 나를 채용한 토목회사가 건설한 터널이 부실공사 시비에 휘말렸다. 지방자치단체의 감사가 시작됐고, 나는 2급 토목기사 자격증을 박탈당했다.

커닝으로 살아온 대가였다. 그나마 다행히 대학 졸업장은 개그맨이 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MBC 개그콘테스트 참가 자격이 ‘전문대 졸업 이상’이었던 것이다.

커닝 버릇은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됐다. 운전면허시험을 볼 때도 커닝 아닌 커닝을 했다. 앞 사람이 푼 시험지의 답 표시를 감독들이 다 지웠는데, 내 시험지에는 답안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강도사 시험에는 네 번이나 낙방했다. 다섯 번째 시험 감독관이 내가 불쌍하고 힘들어 보였던지 참고하라며 쪽지를 건넸다. 나는 그걸 참조해 강도사 시험에 겨우 합격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나같이 못난 사람도 이렇게 쓰시는구나.”

하지만 이내 양심에 찔렸다. 회개기도를 드렸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강도사(준목)고시 합격증이 2003년 겨울 나왔지만 나는 지금도 강도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목사안수도 받지 않았다. 그냥 신학교를 졸업한 전도사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나중에 진짜 내 실력으로 강도사 시험을 다시 치를 것이다. 최근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목회연구원은 진짜 내 실력으로 졸업했다. 이제 내 사전에 커닝은 없다. 하늘을 우러러 정직하게 살고 싶다. 할렐루야.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