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법조비리’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전관들을 겨냥한 가운데 도피 중인 핵심 브로커 이모(56)씨가 관계된 사건에 검찰이 석연찮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이씨와 동업하던 한 사업자가 허위 손해자료를 통해 수억원의 보험금을 부당 수령하는 사건을 저지르고도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사업자는 보험사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브로커 이씨는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대부 거래까지 알선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 대표의 구명과 사업 청탁, 정·관계 로비 등 다방면에서 불거지는 의혹을 풀 열쇠가 이씨라고 보는 검찰은 이씨 검거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법원은 “보험사기”, 검찰은 “무혐의”
새로운 의혹은 물류회사 I사가 화재 손실을 주장하며 저지른 보험사기 사건의 형사 처분과 관련돼 제기됐다. I사는 이씨의 스마트그리드 업체 P사를 인수한 회사로, 이곳의 전 대표이사는 이씨와 함께 P사를 운영했다. 앞서 2013년 5월 3일 경기도 안성시의 한 물류창고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I사 소유 물류들이 모두 불에 탔다. I사는 사고 일주일 뒤 창고업체 측으로부터 화재 손실액 22억여원을 지급받기로 합의했다.
창고업체 측이 재산종합보험에 가입해 있던 D보험사는 같은 해 9월 창고업체 측에 16억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했고, 보험금은 I사로 전달됐다. 이후 손해사정을 거쳐 I사가 수령할 보험금이 20억1800여만원이라는 합의가 이뤄졌고, D보험사는 2014년 2월 I사 측에 나머지 4억1800여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I사가 손해사정 과정에서 허위자료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화재 당시 창고에 있지도 않았던 음료의 매입대금과 노무비용 등 총 4억6430만원이 손해액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를 알게 된 D보험사는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검찰에 I사의 보험사기를 고소했다.
민사소송 결론은 ‘I사가 허위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에 부당이득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4월 I사에 대해 “D보험사에 4억18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I사가 손해사정업체에 단가 등의 허위자료를 제출해 보험금 착오가 생긴 점이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액수 역시 합의금 총액의 20%에 달하는 고액이라고 밝혔다.
D보험사가 I사의 허위자료 제출을 감지해 재판부에 전달한 시점은 2014년 8월이었다. D보험사는 그 다음달엔 검찰에 2차 고소까지 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3월 I사를 무혐의 처분했다. D보험사의 항고가 이어졌지만 이마저 지난해 9월 서울고검에서 기각됐다. D보험사 측은 “I사 관계자가 ‘회사 고위직 친인척이 현직 검사로 있다’며 인맥을 과시했다”고 말했다.
브로커가 살고, 정 대표가 근저당 잡은 아파트
이씨는 정 대표의 금전거래에도 관여한 이력이 있다. 사정 당국에 따르면 이씨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한 소규모 의류업체의 운영자 가족이 소유한 서울 장안동 아파트에 주소를 등록했다. 이씨의 집을 소유한 의류업체 운영자 가족은 2011년 10월 해당 아파트를 담보로 정 대표에게 24억원을 빌렸다. 시중은행을 시작으로 저축은행에 이어 찾은 자금줄이었다.
당시 경기도 남양주의 토지와 건물, 서울 지역 오피스텔 등 다른 부동산도 공동담보 목록에 올랐다. 정 대표에게 설정돼 있던 근저당권은 2012년 5월 해소됐다. 해외 법인까지 있는 대표이사가 소상공인을 상대로 수십억원의 대부를 하는 이례적인 일에 이씨가 껴 있었다. 의류업체 운영자 가족은 국민일보를 만나 “이 회장을 통해 정 대표와 돈 거래를 한 적이 있다” “이 회장은 사기꾼”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잠적이 길어지며 그의 정·관계 인사 친분 등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정 당국에서는 “허풍만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경원 양민철 이가현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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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12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