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국익 위해 ‘과거’ 덮는다… 오바마, 27일 美대통령 첫 히로시마 방문

입력 2016-05-12 04:27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내 비난 여론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와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 굳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히로시마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14만명이 숨진 곳이다.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전범국 일본에 사과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10일(현지시간) “히로시마 방문은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과거 원폭 투하의 시비를 따지는 것이 이번 방문의 목적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내 여론은 비판적이다. USA투데이는 “많은 일본인이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자체를 사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는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철저히 피하겠지만 일본에서는 원폭의 공포와 파괴를 미국 대통령이 인정하는 중요한 제스처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계산법은 여론과 조금 다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신념을 확산시킬 수 있는 데다 전쟁을 치른 일본과의 어색한 과거사를 완전하게 청산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민간인 피해자까지 보듬어 전후 만들어진 미·일동맹을 더욱 공고하게 굳힐 계획이다. 나아가 일본과의 협력 강화로 중국과의 아시아·태평양 주도권 다툼에서도 우위에 서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일본은 대미 외교에서 숙원을 해결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 마이니치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1면 톱 등 주요 기사로 보도하며 “미·일동맹을 과시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교도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의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인 하와이 진주만 방문을 검토 중이라고 전하면서 지난해 미·일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 재개정 이후 격상된 양국 관계를 재평가했다. 방위협력지침 재개정으로 일본 자위대는 기존 패전국의 자체 치안조직 지위에서 미국과 대등한 글로벌 안보의 동반자로 격상됐었다. 그런 격상된 동반자 관계가 이번에 히로시마 방문이라는 파격적 행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평화헌법 해석을 수정해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된 일본으로선 과거 전쟁에 대한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묵인성’ 히로시마 방문을 통해 군국주의 야욕을 더욱 키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밀월관계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발발을 정당화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 외교부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신념에 입각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지만 속내는 편치 않다. 중국 언론은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일본에 피해를 본 동아시아 주변국의 반발이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 미·일동맹 강화는 일본과 영토 분쟁을 겪는 중국의 반발 격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동북아에서의 무력 갈등이 더 첨예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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