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진은 정말 모두 진실할까?

입력 2016-05-12 18:15 수정 2016-05-12 21:29
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을 가려버린 흑점은 펀치 구멍이다. 무제, 작가·장소 미상, 1935∼42년. 갤러리룩스 제공

전시 풍경이 기이하다. 1930년대 미국 농촌의 목가적 풍경과 그 시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사진이 빼곡하다. 한데 작품마다 태양의 흑점 같이 검은 점이 있다. 심장이 뻥 뚫린 것처럼.

서울 종로구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서 선보이는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은 진실만을 말한다’는 통념을 흔든다. 사진이론가 박상우씨(중부대 교수)가 기획한 ‘사진 속 흑점의 진실’은 이렇다.

배경은 1929년 이후의 대공황 시대.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실시하며 농업안정국(FSA)을 신설했다. 빈농 지역 주민들을 비옥한 지역의 집단 농장으로 이주시키는 재정착 프로그램이 이곳의 핵심 사업이었다. FSA의 ‘재정착국 역사부(剖)’가 공보 업무를 관장했는데, 책임자에 경제학자 로이 스트라이커가 임명됐다.

스트라이커의 위력은 대단했다. 기용된 사진작가들이 찍어 온 재정착지의 풍경과 사람 사진들이 ‘공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그는 과감하게 필름에 펀치를 냈다. 질이 떨어지거나, 초점이 맞지 않거나, 노출이 부족한 경우 뿐이 아니었다. 어떤 사진은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일상을 정확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데도 구멍이 나 있다. 사진 속 누군가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어떤 사진은 ‘너무 예술적’이라는 이유로 펀치 질을 당했다. 신경질이 난 듯 펀치가 두 번, 세 번 가해진 경우도 있다. 아더 로드스타인, 벤 샨 등 유명 사진작가들의 사진도 무참하게 구멍이 뚫렸다.

전시기획자인 박 교수는 “다큐 사진을 둘러싼 오래된 담론(객관성, 사실성, 진실성)이 얼마나 신화적이고 허구적인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펀치 사진은 총 10만장에 이른다. 폐기될 위기도 있었지만 현재 미국 의회 도서관 홈페이지에 아카이빙 돼 있다. 치부가 될 수 있는 기록도 보존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지는 전시이기도 하다. 6월 4일까지(02-720-8488).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