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과정에서 환자를 성추행, 성폭행한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일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진료행위 중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서 곧 폐기된다. 성범죄 의사의 의료기관 10년 취업제한 규정은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최소 2년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성추행 의사 면허취소 법안 곧 폐기=11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진료행위 중 성범죄로 벌금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서 폐기가 확실시된다.
복지부는 지난 3월 9일 법 개정 의사를 밝혔다. 수면내시경 환자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의사가 검거되는 등 여성 환자들의 불안이 커진 데 따른 것이었다. 실제 법안은 3월 28일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이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는 총선 등 일정으로 해당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19대 국회에서 개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20대 국회가 시작하면 정부 입법으로든, 의원 입법으로든 지속적으로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해 시행까지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취업제한 규정은 되레 약화=이런 가운데 성범죄 의사에 대한 취업제한 규정은 약해지게 됐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성인 대상 성범죄자의 특정 직종 취업제한 기간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기존에는 무슨 형을 선고받든 일률적으로 10년간 취업을 제한했지만 헌재의 위헌 판결에 따라 앞으로는 형에 따라 10년(3년 초과 징역·금고 시), 5년(3년 이하 징역·금고 시), 2년(벌금형)으로 다르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사가 성범죄로 벌금형을 받은 경우 취업제한 기간이 기존 10년에서 2년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진료 과정에서 환자를 성추행을 했든, 병원 밖에서 성범죄를 저질렀든 상관없이 ‘벌금형’ 기준으로만 취업제한 기간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의사 직무 이용 성범죄 양형기준 높여야”=범죄 전문가들은 헌재와 여가부의 결정이 법리적으로 맞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시대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병식 동국대 법대 교수는 “진료 과정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게 분명하다면 의료법을 고쳐서라도 영원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영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가 마취 상태에서 가벼운 성추행을 한 초범의 경우 선고형은 낮겠지만 재범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면서 “취업제한 기간 차등 적용이 어쩔 수 없는 조치라면 직무를 이용한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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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의사 처벌… 국회 ‘미적’ 당국 ‘살살’
입력 2016-05-11 19:53 수정 2016-05-11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