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실종자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은 72시간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까지 구조하지 못하면 생존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지난 6일, 최악의 지진이 일어난 지 20일 만에 찾아 간 에콰도르 페데르날레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습니다. 산산 조각난 건물들은 지진규모 ‘7.8’이란 숫자가 얼마나 강한 힘으로 이 땅을 뒤흔들었는지 짐작케 했습니다. 꺼졌다 켜지길 반복하는 텔레비전에선 디에고 푸엔테스 에콰도르 내무차관이 “실종자 명단에 오른 2000여명 가운데 현재까지 찾은 사람은 300여명 정도”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골든타임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습니다. 절망이 이 땅을 짓누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난 현장 곳곳에서 만난 에콰도르인들의 모습에선 ‘비관’ ‘슬픔’ ‘절망’ 가운데 움트고 있는 ‘기대’ ‘위로’ ‘희망’이 엿보였습니다. 지진으로 건물의 90%가 무너진 카를로스 마리아 초등학교의 한 교실을 찾아갔습니다. 나비가 평화롭게 동산을 날아다니던 벽화는 큰 구멍이 뚫려 찢어진 그림책 같았습니다. 그 구멍 사이로 한 소년이 보였습니다. 시멘트 담장 아래서 맨발로 그림책을 보던 소년은 인기척을 느끼곤 경계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주머니에서 초콜릿 과자를 꺼내며 웃어보이자 그제야 손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학교 2학년인 피를로 메르도(8)군은 이번 지진으로 세 살 터울의 형을 잃었습니다. “나는 못 그리는 그림을 형은 마술처럼 그려줬다”며 형을 추억하던 그는 “형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지어질 학교에 멋진 벽화를 그려주고 싶답니다.
육중한 포클레인이 건물을 헐어내는 현장 옆에선 아우실리아 로드리게스(49·여)씨가 삶의 터전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로드리게스씨는 6명의 가족과 함께 인근 친구 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질 때쯤 한 남자가 다가와 조용히 그녀를 안았습니다. 큰아들인 루이스 멘도사(22)씨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볼에 입을 맞추곤 얘기했습니다. “어머니. 하늘이 우리에게 새집을 주시려고 헌집을 가져간 거예요. 저랑 같이 더 멋진 집에서 살아야죠.”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시멘트를 뚫고 삐져나온 철근들이 더 이상 흉물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시가 많아도 아름다운 장미꽃 같았습니다.
학교가 무너졌다고 아이들의 꿈마저 무너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이 무너졌다고 가족의 사랑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천막 피난처에서도 생(生)에 대한 ‘감사’로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이재민들,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벽돌쌓기 놀이를 하며 천진난만하게 자기만의 집을 짓고 있는 어린이들. 이들에겐 여전히 에콰도르의 골든타임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가 에콰도르 지진 피해지역의 재건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자리 잡은 ‘강도당한 이웃’을 기억하고 응원의 손길을 전할 때 ‘희망’의 씨앗은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겁니다. 에콰도르의 골든타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페데르날레스(에콰도르)=
글·사진 최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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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쿡] 지진 현장의 에콰도르 사람들, 절망 속에도 빛나는 희망·감사
입력 2016-05-11 19:38 수정 2016-05-15 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