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외국인 범죄 ‘외국인 안테나’로 잡는다

입력 2016-05-12 18:00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법무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내 체류 외국인은 189만명에 이릅니다. 곧 ‘외국인 200만명 시대’가 열릴 전망입니다. 체류 외국인이 늘면서 각종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저지르는 강력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외국인 피해자’도 많아졌습니다. 불법 체류자나 결혼이주여성은 피해를 당해도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립니다. 한국의 법과 문화를 몰라 고향에서 하던 대로 했다가 의도치 않게 경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체류외국인 200만명 시대, 외국인 범죄를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을까요.

외국인 범죄, 외국인으로 막는다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 피의자는 2010년 1만9446명에서 2014년 2만8456명으로 46%나 증가했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외국인 피의자가 3만8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합니다. 외국인이 저지르는 ‘5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도 꾸준히 증가세입니다. 2010년 7625명이던 강력범죄 피의자는 2014년 1만1069명으로 늘었는데요, 강간과 폭력 사건 피의자가 많이 증가했습니다.

외국인 범죄가 늘고 있지만 이를 막을 경찰 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12일 “경찰 인력만으로 늘어나는 외국인 범죄를 막기는 어렵다. 외국인과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과 접촉을 늘리려고 합니다. 외국인들을 통해 범죄 관련 첩보를 입수하거나, 외국인 사이에서만 맴도는 피해 사실을 알아내는 겁니다.

지난해 8월 나이지리아 국적의 A씨(28)씨는 휴대전화의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으로 국내 체류 중인 에티오피아 국적의 B씨(26·여)를 만났습니다. A씨는 B씨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두 차례 강간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현장에서 검거해 구속했습니다. 경찰에게 B씨의 피해 사실을 알려온 사람은 에티오피아 교민회장이었습니다. A씨가 범행 후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B씨가 교민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겁니다. 평소 서울 용산경찰서 외사계와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교민회장이 바로 신고를 하면서 A씨를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경북 구미에서는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스리랑카 국적의 C씨(37)가 수갑을 찬 채 도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전담팀까지 꾸렸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많이 의지하는 종교지도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마침 도주했던 C씨도 이 종교지도자에게 “수갑을 차고 도망쳤다. 도와 달라”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C씨를 만나 “스리랑카로 돌아가는 게 당신에게도 좋다. 계속 숨어 지낼 수는 없다”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제 발로 경찰서에 왔고,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C씨는 강제출국 조치됐습니다.

속앓이하는 ‘외국인 피해자’도 구한다

외국인 피의자만 있는 게 아니라 피해자도 존재합니다. 다만 불법체류자이거나 결혼이주여성이 피해자일 경우 혼자 끙끙 앓는 일이 많습니다. 경찰은 주변 외국인들을 통해 피해 사실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현재 전국에서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학생으로 구성된 외국인 자율방범대원 1448명, 결혼이주여성으로 구성된 외국인 치안봉사단 1711명이 경찰과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들을 통해 외국인 관련 범죄 첩보를 입수하거나 말 못할 사연을 듣고 있습니다.

대전경찰청 외사계는 지난 2월 국내 체류 외국인 26명에게 여권·비자 등을 발급해주겠다고 속여 37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이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영어가 능한 이씨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취업 사기 등을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경찰은 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하는 외국인들에게 ‘사기를 당했는데 신고를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불법 체류 중인 일부 피해자들은 경찰을 피하기도 했지요. 경찰 조사를 받아도 강제출국 조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8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중국 결혼이주여성 D씨(43)씨는 남편과 생활비 문제로 다투다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는 등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해왔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중국 출신 치안봉사단원이 경찰에 이 내용을 알렸고, 충남 공주경찰서는 지난 1월 한국인 남편을 상습폭행 혐의로 붙잡았습니다.

모르면 ‘죄’…경범죄 범죄예방교실

외국인들에겐 모르는 게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향에서 하던 대로 한국에서 행동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법자’가 되기도 합니다. 경찰은 문화적 차이, 다른 법체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외국인들을 찾아다니며 범죄예방교실을 열고 있습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3월 서울대에 입학한 외국인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범죄예방교실을 열었습니다. 가장 강조한 것은 중국에서 진통제로 쓰이는 ‘치통편’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상비약으로 치통편을 쓰는데, 여기엔 마약 성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관악서 외사계 관계자는 “치통편을 한국엔 반입하면 안 되는데 이를 모르고 가지고 들어오는 중국 유학생들이 있어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에선 길에 떨어진 물건을 함부로 주워가서는 안 된다는 교육도 이뤄집니다. 서울 마포경찰서 외사계 관계자는 “일부 국가에선 주운 물건을 본인이 가져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있다”며 “한국에는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있어 처벌을 받을 수 있고, CCTV 등 수사기법이 발달돼 있어 신고가 들어왔을 때 금방 경찰이 추적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고유한 문화나 관습이라곤 하지만 한국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행동도 외국인들이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태국에선 장식한 칼을 허리에 차고 다니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유 없이 흉기를 소지하면 불법입니다. 칼이 주변 사람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은 천연고무로 만든 껌을 씹다 내용물이 나오면 바닥에 침을 뱉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도 한국에선 경범죄에 해당합니다. 경찰은 이런 경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한다고 합니다.

김판 박은애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