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공정위, 환율 담합 면세점 봐주기

입력 2016-05-12 04:05

공정거래위원회는 면세점 상품에 적용하는 환율을 담합한 호텔신라 등 8개 면세점 사업자에 시정명령을 부과했다고 11일 밝혔다. 6년간의 장기간 담합을 확인하고도 과징금은 한 푼도 부과하지 않은 이례적인 결정이다.

호텔신라와 호텔롯데 등 8개 면세점 사업자들은 2007년 1월부터 2012년 2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전화 연락 등을 통해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국산품에 적용할 환율과 적용시기를 맞췄다. 면세점의 국산품 원화가격을 달러로 표기할 때 기준이 되는 환율이 시장환율보다 낮으면 면세점 이익이 커진다. 공정위 조사결과 담합기간 동안 이들 업체의 적용환율이 시장환율보다 낮아 이익을 키운 기간이 반대 경우보다 더 길었다. 이들 사업자는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뒤 한 달 만에 담합을 중단하고, 일부는 리니언시(자진신고 감경제도)까지 신청했다.

이처럼 명확한 담합을 확인하고도 공정위는 ‘앞으로 조심하라’는 식의 시정명령만 내렸다.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은 이유는 업체를 봐주기 위한 억지 논리에 가깝다. 환율을 담합해 가격을 높였지만 다양한 할인행사를 벌였기 때문에 할인가격까지 고려하면 이들 업체가 얻은 부당이득이 아주 미미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이제 담합을 해도 업체가 할인행사를 벌였다는 근거만 있으면 과징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공정위는 올 들어 오라클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사건 등 대형 사안에 줄줄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최근에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친기업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국민일보 5월 3일자 18면 보도). 공정위는 당시 해명자료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기 위한 시행령 개정”이라고 밝혔다. 불공정한 대기업들에 면죄부를 주기에 급급한 행태가 공정위가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길 바란다.

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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