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부산 사하구의 ‘감천마을’에 가 봤다. 인근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열렸던 바다미술제를 취재하러 갔을 때다.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를 목격하고 싶기도 했지만, 근저에는 관광명소 인증샷 대열에 끼고 싶은 얄팍한 집단심리가 작동했음을 숨기지 않겠다.
망연자실했다. 산동네에는 집들이 게딱지처럼 앉아 있었다. 지친 어미 등에 매달린 가난한 집 아이들처럼 말이다. 남루한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등고선 같은 좁은 골목을 걷는데 슬픔이 차올랐다. 마당은커녕 자물쇠를 채운 알루미늄 섀시 문, 쇠창살을 친 창이 없다면 사생활과 안전이 담보되지 못하는 동네. 남의 가난을 구경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파스텔 톤으로 외벽을 칠했어도 남루는 분칠될 수 없었다.
부산에 감천마을이 있다면 서울 종로구에는 이화마을이 있다. 감천마을(2009년)보다 먼저 2006년에 조성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했던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원조다. 이화마을의 명물 계단벽화가 사라진 사건으로 요즘 시끄럽다. 시멘트 계단에 예술가들이 그렸던 해바라기 그림, 잉어 그림이 밤새 회색 페인트로 지워진 것이다. 벽화를 그린 작가와 분개한 일부 주민은 훼손한 이들을 경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예산으로 그려진 공공미술이다. 말하자면 공공재산이다. 벽화 제작자들 사이에선 ‘문화적 테러’ ‘반달리즘’이라는 비난까지 나온다. 훼손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주거지에 관광지가 웬 말이냐, 주민들도 편히 쉬고 싶다.” 붉은 담벼락 글씨가 웅변하듯, 관광객이 늘며 생겨난 사생활 침해가 한 축이다. 방송을 타고, 외국 웹진에 소개되면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실상은 지난해 말부터 추진된 도심재생사업에 대한 일부 주민의 불만 탓이라는 주장도 있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가까이에 위치한 성곽마을을 고층아파트로 재개발하는 대신 기존 마을의 특성을 살리면서 정비하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선회했다. 이화마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당초 재개발사업 구역이었다. 서울시의 방향 전환은 개발에 따른 부동산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봉쇄당하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은 어찌 보면 터질 시점에 잘 터졌다. 마을미술 프로젝트가 시행된 지 딱 10년이다. 이 사업 역시 1970년대 새마을운동식으로 해치운 측면은 없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국은 톱다운 방식의, 빨리빨리 문화의 재탕이 아니었을까. 새마을운동이 초가집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고치는 등 완전일소 식이었다면,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누추함을 문화적 향수로 팔면서 ‘예술’로 화장을 했다는 차이 정도.
당시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태호 교수는 “노인회장, 동장, 통장 등 마을어른과 대표적인 분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주민설명회도 몇 차례 열었다”며 소통을 강조했다. 과연 충분한 기간이었을까. 7월 예술감독을 선정하고, 12월초 완공되기 까지 6개월 안에 끝난 사업이었다. 더톤 윤태건 대표는 “주민의견을 수렴했다고는 하지만 의사결정권을 가진 ‘장(長)’을 중심으로 진행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의 나오시마는 버려진 섬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든 성공 사례다.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 등 현대미술 대가의 작품이 즐비하다. 현대미술 축제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까지 열려 전 세계 문화관광객의 순례지가 됐다. 미술기획자 강철씨는 “그렇게 되기까지 2000회 넘는 주민 설명회가 열렸다”고 전한다. 우리는 나오시마의 성공만 봤지 그 과정은 배우지 않았다. 더디 가도 반대 목소리를 수용하는 게 행정이다.
손영옥 문화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내일을 열며-손영옥] 새마을운동식 문화프로젝트
입력 2016-05-11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