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제14회 할머니 할아버지 초청 행복축제’가 열렸다.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어르신 3500여명이 찾아와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4년 전부터 대전성시화운동본부가 주관이 돼 치르고 있지만 대전 송촌장로교회(박경배 목사)가 처음 시작해 10년 이상 도맡아 치러온 행사다. 이제는 해마다 대전 지역의 노인들이 대대적으로 섬김을 받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 행사는 2001년 송촌장로교회가 마땅히 갈 곳 없는 지역의 노인들을 초청해 섬기면서 시작됐다.
첫해부터 빠짐없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노인들을 섬겨온 김숙희(53·여) 권사는 10일 “하루 종일 노인들을 섬기는 것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부모님을 섬긴 것처럼 즐겁고 기쁘다”며 “행복축제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한밭교회 등 여러 교회에서 참석했지만 과거엔 송촌장로교회 교인들이 행사를 거의 다 섬겼다. 평균 300∼400여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섰고, 직장을 다니는 남자 성도들은 월차를 내고 행사에 참석했다.
교회는 행복축제와 더불어 2002년부터 노인대학을 열었다. 처음에는 노인대학이라 해도 실제 노인들은 교회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다. 김미영(50·여) 권사는 “어르신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초기에는 진짜 가요만 불렀다”며 “사실 교회에서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는데 오히려 그렇게 했더니 많은 어르신들이 찾아오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가요와 찬양의 비중이 50대 50이고, 목사님이 자연스럽게 설교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그동안 지역 노인들을 섬기느라 다 못했던 효도를 하기 위해 교회는 2014년부터 부모님 초청 효도잔치도 펼치기로 했다.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노인들을 섬긴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점점 더 부흥했다. 1991년 대전 대덕구 중리동 벌판에 비닐하우스 천막을 짓고 어른 11명, 어린이 7명으로 시작한 교회는 99년에 새 예배당을 지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공간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하게 됐다.
박경배 목사는 교회 건축 과정에서 다시 한 번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2011년 새 건물을 지으면서 ‘송촌 컨벤션센터’로 짓기로 한 것이다. 교회 인근 지역에 공연을 즐길 만한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다. 교회를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지역사회에 내놓기로 결단한 것이다.
주일날 대예배실로 쓰는 임마누엘 채플과 더불어 지역사회서비스 꿈사랑성인학교, 꿈사랑작은도서관, 극단씨앗, 대덕사랑노인복지센터 등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1층에는 아늑한 송촌 카페도 만들었다. 교인과 외부인의 차별 없이 똑같은 가격에 커피를 판매한다. 오히려 평일에는 교인보다 지역 주민들이 더 많이 찾는 공간이 됐다.
가장 큰 임마누엘 채플은 졸업식을 비롯해 결혼식 등 각종 행사장으로 지역 주민들이 쓸 수 있다. 십자가 같은 조형물도 따로 두지 않았다. 주일 대예배를 드릴 때만 강단 위에 강대상과 커다란 지구본, 성경 조형물을 올려놓는다. 교회는 가수들을 비롯해 여러 음악단을 초청해 무료 공연도 펼쳤다. 최근에는 탈북자들의 합동결혼식도 교회에서 열었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교계 행사도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시대에 맞춰 공급해주면서 송촌장로교회는 지역의 중심센터로 튼튼히 자리 잡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역사회와 함께 가지 않으면 교회는 왕따 당한다”는 박 목사의 목회철학의 영향이 컸다. 아울러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에 공감하며 기쁘게 지역 섬김에 동참한 교인들이 있었다. 교회는 컨벤션센터를 운영하면서 별도의 청소 용역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교인들이 연초에 센터의 화장실, 계단 등 구석구석 구역별로 청소 담당을 정해 직접 청소와 관리에 헌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교회로 옮긴 사역자가 “송촌교회에선 당연하게 생각되던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다른 교회에 와 보니 알겠다”고 했을 정도다. 박 목사는 “교인들이 지역을 섬기면서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우리 교회에 대한 자긍심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 “부모 공경 메시지 가득한 성경은 효경”
박경배(사진) 목사는 지난 8일 대전 송촌장로교회 대예배 설교에서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했다. 평소 부모 공경의 메시지가 가득한 성경이야말로 ‘효경’이라고 말한다는 그의 목회철학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목양실에서 박 목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처음부터 노인을 섬기는 목회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2000년 즈음, 지역사회를 섬길 수 있는 복지 목회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인정 외에 딱히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해 노인대학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노인을 섬기는 교회로 대전 지역에 소문이 나면서 교회 이미지가 좋아졌고, 그것이 곧 교회 부흥의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지역사회를 사심 없이 섬기니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것”이라며 “조직이나 프로그램 등 인간적인 방법에 의한 부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령을 밑바닥에서 끌어올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주는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났다”고 부연했다.
이후 지역에 노인들을 위한 문화센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 노인 복지가 향상됐다. 어느 정도 노인 복지에 대한 지역적 필요가 충족되자 시선을 돌렸고, 곧 문화 활동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포착했다. 교회를 새로 건축하면서 컨벤션센터로 지은 이유다. 박 목사는 “교회가 밀폐된 공간으로 남아선 안 되고 어떻게든 문턱을 낮춰서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을 거쳐 지난해 대전성시화운동본부 총회장을 맡았다. 동성애, 이슬람 등 다양한 한국교회의 이슈에 대응해왔으며 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 등 교육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 왔다.
앞으로는 지역사회에서 도덕성 회복운동을 펼치고자 한다. 그는 “청소년들 사이에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기조가 팽배해 있는 것은 망조가 아닐 수 없다”며 “사회가 정직해지려면 교회가 먼저 정직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그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박 목사는 외롭더라도 꿋꿋이 도산 안창호 선생처럼 송촌장로교회에서부터 정직 회복 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박 목사는 갈수록 공교육이 무너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다음세대를 세울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다. 교회가 직접 대안학교를 세우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그는 “정말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르치고 바르게 키우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학교장을 찾고 있다”며 “아이들을 사랑하고 비전을 심어줄 수 있는 모범적인 스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김나래 기자
[한국의 공교회-대전 송촌장로교회] 지역사회 어르신 잘 섬기자 교회 부흥
입력 2016-05-11 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