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257장 (통 189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고린도전서 5장 1∼13절
말씀 : 일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용해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2). 하지만 고린도교회는 성도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사도적, 도덕적 권위를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 속에서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에 대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교회 공동체의 순결입니다. 고린도교회 한 성도가 성적인 문제에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음행을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1). 레위기 18장 8절과 신명기 22장 30절에선 이런 경우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초대교회에서는 성도들이 구약성경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3)고 당부합니다. 가죽 종이에 쓴 책은 ‘타 비블리아’인데, 지금과 같은 한 권으로 된 구약성경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한 부분을 적어 놓은 성경을 지칭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경에서 근친상간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었던 성적인 타락에 대해 어떤 제재와 신앙적인 권면도 없었습니다. 작은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죄는 누룩과 같이 금방 개인의 신앙과 교회 전체에 퍼지고 나중에는 신앙의 순수, 공동체의 순결을 잃어버리게 됩니다(6).
둘째, 잘못 사용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합니다(요 8:32).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 10:23)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선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만해 졌다’는 말은 교회 안에 심각한 죄의 문제가 생겼는데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고린도라는 도시 전체에 만연했던 성적인 방종과 문란함에 젖어 그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담대해지고 교만해져 있었습니다. ‘통한히 여기지 않았다’는 말에서 ‘통한히’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애통함’입니다. 심각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애타는 심정의 통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인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잘못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에 대한 담대함만 키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용서해 주시고 믿음 안에서 항상 새롭고 성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주신 자유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정당화하는 데 쓰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상윤 목사(한세대 외래교수)
[가정예배 365-5월 12일] 죄와 교만
입력 2016-05-11 17:37 수정 2016-05-11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