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여자들은 아주 단순한 존재가 된다. 몇몇 유형의 틀 안에 갇히기 십상이다. 예쁘고 착한 주인공, 수다스럽거나 오지랖 넓은 친구, 못생기고 뚱뚱하고 눈치 없는 개그 캐릭터, 독한 악녀, 주책맞은 아줌마…. 뻔한 캐릭터들이 조금씩 차이를 두고 반복 재생된다. 남성들이 종종 입체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데 반해 여성 캐릭터는 이렇듯 대체로 밋밋하다.
여배우나 여성 방송인이 종종 ‘설 자리가 많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TV 속 천편일률적인 모습은 여성 캐릭터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여성 방송인의 입지를 좁혀 왔다.
최근 이런 식상한 틀에서 벗어난 방송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시작한 tvN 드라마 ‘또! 오해영’과 지난달 8일 첫 방송한 KBS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다. ‘또! 오해영’은 다소 찌질하지만 화끈한 성격의 32세 미혼여성 오해영을 둘러싼 로맨틱 코미디,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6명의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또! 오해영’은 케이블 월화드라마라는 핸디캡에도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4%를 넘겼다. 특히 20∼40대 여성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름은 같은데 예쁘고 똑똑하고 잘난 고교동창 오해영(전혜빈) 때문에 숱하게 피해를 입고 살아왔던 오해영(서현진)의 이야기가 공감을 자아낸다.
서현진이 연기하는 오해영은 가족들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소 괴팍하다.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졌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느냐”며 결혼식 하루 전 파혼을 선언하고, 병음료를 한 번에 마시려다가 뒤로 넘어져 팔이 부러진다. 술에 취해 회사 이사에게 맞짱을 제안하기도 한다.
세상엔 이런 여자도 있고, 드라마 주인공도 될 수 있다는 걸 ‘또! 오해영’은 보여주고 있다. 서현진이 그려내는 오해영은 20∼40대 여성들의 ‘내 모습’과도 종종 겹친다. ‘그래, 그럴 수 있지’하고 공감하게 된다. 남자 주인공 박도경(에릭) 엄마의 대사 한 줄은 좌충우돌 살아가는 오해영과 우리의 삶을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제대로 찌질하면 명작이다.”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진솔함으로 파고들고 있다. 배우 라미란과 민효린, 방송인 김숙과 홍진경, 가수 티파니와 제시가 한 멤버가 됐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데 의외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다시 도전하는 이 프로는 예능과 다큐의 경계를 오가며 시청자들에게 진심을 전하고 있다. 라미란의 못다 이룬 꿈 가수 도전에 이어 이번엔 박진영과 손잡고 민효린의 걸그룹 결성에 함께 나선다.
감동이 있지만 웃음이 빠진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 ‘1박2일’ ‘런닝맨’처럼 큰 웃음은 아니더라도 잔잔하고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라미란, 김숙, 홍진경 등이 웃음 담당이라면 민효린, 티파니, 제시는 솔직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비록 시청률 5%를 넘기지 못하며 아직 고전 중이지만 마니아층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여자들에게 공감 받는 여자들의 이야기 굿∼ tvN ‘또! 오해영’·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입력 2016-05-11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