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스토킹에 협박까지… 맨해튼의 악덕 임대업자 철퇴

입력 2016-05-11 04:02
미국 뉴욕 맨해튼은 월세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뉴욕주 당국은 청년층, 저소득층, 유학생을 위한 세입자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대표적으로 저소득층이 입주한 아파트를 ‘임대 규제 아파트’로 지정해 2년마다 정해진 범위에서만 월세를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이 아파트에선 임대차계약이 만료된 뒤에도 계약연장 여부를 세입자가 정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런 임대 규제 아파트에서도 최근 몇 년간 저소득층이 꾸준히 밀려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대사업자들이 온갖 횡포를 부려 저소득층을 아파트에서 쫓아내고 있어서다.

보다 못한 뉴욕 주정부는 지난해 사법 당국과 공조해 악덕 임대사업자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그 성과가 9일(현지시간) 나왔다. 악명 높은 임대사업자 스티븐 크로먼(49·사진)이 기소된 것이다. 그에게는 탈세, 사기, 건축물 불법개조 등 20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악덕 임대업자 퇴출이 본격화되는 상징적 기소”라고 평가했다.

NYT에 따르면 크로먼은 세입자에게 저승사자 같은 인물이다. 그가 소유한 부동산업체는 맨해튼에 임대건물 140개를 운영한다. 그에게서 쫓겨난 세입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크로먼 세입자 연대’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퇴거거부 요령, 법적대응 방안을 공유하고 있다.

크로먼은 임대 규제 아파트를 오히려 축재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는 저렴한 임대 규제 아파트를 사들인 뒤 저소득층 세입자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쫓아낸 뒤 아파트를 개조해 비싼 월세를 받는 수법을 썼다. 세입자를 쫓아내는 방식은 매우 집요했다.

로빈 차네스라는 남성은 맨해튼 6번가 임대 규제 아파트에서 40년간 살고 있었다. 하지만 크로먼이 아파트를 인수한 뒤 쫓겨났다. 처음에는 퇴거를 거부했지만 온수 공급이 중단됐고, 곧이어 전기와 가스가 끊겼다. 집 앞에서 끊임없이 공사를 벌여 먼지를 피웠다. 그래도 퇴거하지 않으면 크로먼이 ‘비밀병기’로 부르는 전직 뉴욕경찰 출신 경호대장을 동원해 협박에 나섰다. 경호대장은 택배 직원이나 수리공으로 위장해 문을 열게 한 뒤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사진을 찍고, 경찰을 동원하겠다고 협박해 결국 집을 떠나도록 만들었다.

크로먼은 이런 고전적 방식에 머물지 않았다. 맨해튼 18번가에 살던 신시아 체이피라는 여성은 퇴거를 거부하다 소송을 당해 법원에 18차례 출두해야 했다. 소송비용도 적잖게 날렸다. 크로먼은 심지어 여행을 떠난 세입자들까지 쫓아다니며 스토킹했다.

당국의 세입자 보호 장치에도 불구하고 악덕업자의 집요한 괴롭힘에 결국 저소득층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NYT는 전했다. 하지만 이번에 거물급 부동산업자를 기소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감시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뉴욕주 에릭 슈나이더만 법무장관은 “저소득층을 괴롭히거나 임대 규제 아파트를 ‘금광’이라고 생각하는 임대업자들은 크로먼 기소를 강력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