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단행본 출판사로 꼽혀온 민음사가 오는 19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의 문학도 박맹호(민음사 출판그룹 회장)씨가 32세의 나이에 1966년 5월 서울 종로구 청진동 옥탑방에서 출판사 문을 열었다. 이후 민음사는 이문열의 ‘삼국지’와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해 5000종 이상의 책을 출간했고, 민음사, 사이언스북스, 비룡소, 황금가지, 세미콜론, 반비, 민음인, 판미동, 펄프 등 9개 자회사를 거느린 출판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민음사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50주년 기념일을 열흘 남짓 앞두고도 기념식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민음사 측은 10일 “50주년을 맞아 준비한 기념행사는 따로 없다. 사내 기념식도 할지 안 할지 모르겠다”며 “연초부터 사내에서 5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지만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창비가 계간지 ‘창작과비평’ 50주년 기념해 ‘창비 50년사’를 발간하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축하모임을 성대하게 치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현암사도 지난해 11월 설립 70주년을 맞아 도서 전시회를 여는 등 기념행사를 가졌다.
민음사 측은 박 회장의 건강 상태가 안 좋아 50주년 기념행사에 신경 쓸 분위기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민음사 역사를 상징하는 박 회장이 기념행사에 나설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닌데다,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박 회장의 두 아들 박근섭(52) 박상준(44) 민음사 공동대표도 병 수발을 드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82세인 박 회장은 10년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았으며 자녀들에게 경영을 맡긴 뒤에도 출판사에 나와 업무를 봤으나, 근래에는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음사는 지난해 매출도 전년 대비 34%나 줄었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그간 효자 노릇을 하던 ‘세계문학전집’의 매출이 크게 줄어든 게 매출 감소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박 회장의 장녀 박상희(54)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아동책 전문 브랜드 비룡소의 경우, 5억1400만원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게다가 비룡소 편집자가 비룡소책방 개장 공사 과정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최근 발생하기도 했다.
민음사 관계자는 “지난 2014년 민음사에 공동대표 체제가 시작된 후 경영합리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매출 감소가 가시화되면서 회사 전체적으로 비용 줄이기가 최대 현안이 됐다”면서 “50주년 기념행사를 안 하기로 한 것도 비용 절감 차원의 결정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민음사 관계자는 “외부에서 보자면 민음사 같은 상징성이 큰 출판사가 50주년 기념식도 안 하고 매출도 크게 줄었다고 하니까 위기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음사는 물론이고 출판그룹 전체적으로도 지난해 영업이익은 다소 늘었다”며 “민음사 내부에서는 기념식을 안 하는 것을 두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책에만 집중하자는 경영진의 의지가 표현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출판명가’ 민음사, 너무나 조용한 50주년
입력 2016-05-11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