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처벌 대신 내민 사랑의 손… ‘절망 비행’ 벗고 ‘희망 비행’

입력 2016-05-10 21:35
‘애제자’ 박기명군과 스튜디오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배상혁(사진 왼쪽) 서울 동부보호관찰소 주무관. 보호관찰을 벗어난 박군이 비행(飛行)하도록 배 주무관이 마련한 자리였다. 박군의 팔 문신이 눈에 띈다.
꿈을 키워가는 보호소년들과 함께 ‘희망화보’를 찍은 배상혁 주무관. 배 주무관의 이야기라면 선생님처럼 기꺼이 따르는 소기정 이진실 박기명(왼쪽부터).
보호 소년들과 함께 중국 여행 중인 배상혁 주무관.
배상혁(44)씨는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그가 일하는 곳은 서울동부보호관찰소입니다. 보호관찰소는 죄 지은 사람을 선도하고 교화시키는 법무부 소속 기관입니다. 직책이 주무관인 그는 보호관찰 대상자들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일을 합니다.

언뜻 보면 삭막할 것 같은 직업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벼랑 끝에 선 이들의 손을 주는 직업, 그래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이 있을까요.

그는 지난 4월 27일 박기명(21), 소기정(20). 이진실(18) 등 보호소년 3명을 강남구 역삼동의 한 스튜디오로 불러 모았습니다.




아끼는 보호소년들과 ‘희망 화보’ 촬영

애제자처럼 아끼는 보호소년을 모은 이유는 ‘희망 화보’를 찍기 위해서입니다. 어두웠던 비행(非行)의 시절을 벗고 꿈과 희망의 날개로 비행(飛行)하는 제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화보 촬영에 나선 것입니다. 보라, 절망은 갔으니 희망의 날이 오리라.

반항하고, 죄를 짓고, 구인하고, 수갑 채우던 관계에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희망으로 띠를 띄우는 관계로 변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사진작가의 요청에 따라 여러 포즈를 취하면서 환한 웃음을 터트리는 그들에게서 희망이 또렷하게 인화되는 것을 봤습니다. 아직은 어두운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했고, 상처와 아픔이 다 낫진 않았지만 끝끝내 성공할 것을 기대합니다.

배상혁씨의 꿈은 교사였습니다. 그는 2004년 임용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교육청이 한 사립학교에 발령을 냈지만 막상 채용된 이는 뒷돈 기부금을 낸 사람이었습니다. 부패사학을 상대로 한 2년간의 민사소송 끝에 승소하면서 손해배상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는 부패한 교육 현장을 떠났습니다. 임용의 권리를 주장할 순 있었지만 2년간 싸우면서 부패한 교육환경에 환멸을 느낀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 꿈은 물거품됐지만…

대신에 학원 강사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햄버거를 사달라며 따르던 학원 제자(16)가 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리면서 소년원에 갔습니다. 면회 와달라는 편지가 왔습니다. 면회 갔더니 치즈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년원 규정을 어기는 것이었지만 치즈 케이크를 가져가서 몰래 떠먹였습니다. 소녀에게 “무엇이 되고 싶냐”고 꿈을 물었더니 “소년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년원을 교도소와 같은 곳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학교였습니다. 소녀가 있던 여자 소년원인 안양소년원의 다른 이름은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입니다. 제자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나의 꿈이 선생이었어. 진실과 정의를 가르치는 선생. 아이들의 편이 되어주는 선생. 부패 사학 때문에 선생이 되지 못했지만….’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그는 보호소년들의 선생이 되고 싶어서 보호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2013년 경력직 특채로 보호직 공무원이 된 그는 신명을 다했습니다. 각종 비행으로 재판을 받고 보호관찰소에 온 소년들을 돌보는 일은 천직이었습니다. 반항하던 소년들은 그의 진심에 반했습니다.


“소년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을 청한 소년들은 어떻게든 도왔고 지켜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의리 있는 선생님’이라며 좋아했습니다. ‘희망 화보’를 촬영한 기명이와 기정이가 그를 따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서울 광진구에서 유명한 주먹이었던 기정이는 그를 만나면서 회심했고 눈물 짓던 엄마는 요즘 웃음을 짓습니다.

보호소년 중에 ‘짱’이었던 채문(가명·19)이는 작심하고 소년원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소년원에서 검정고시에 합격한 것은 물론 자동차 정비자격증을 비롯한 3개의 자격증을 땄습니다. 죄를 벗어던진 채문이는 “선생님이 소년원에 보내주셔서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빛의 아들이 된 채문이는 자동차 정비업체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주먹으로 전국구였던 기명이는 4년 전, 승용차로 경찰을 치고 달아났다가 자수했습니다. 경찰은 공권력에 도전한 기명이를 직접 처벌하기 위해 신병 인수를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그가 거절했습니다. 기명이는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기관과 대치한 선생을 보면서 2m 넘는 덩치로 품에 안겼습니다. 기명이 사건 이후 그는 소년 패거리에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보호소년은 훈계와 처분으론 잘 변하지 않습니다. 대신 진심으로 안아주고 이해해주면 잘 변합니다.


긴 터널 지나 청년사업가 된 기명이

페이스북 스타(팔로워 20만7127명)인 박기명은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지난 3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타들을 대거 영입해 종합마케팅 엔터테인먼트(디다일리아)를 시작한 청년사업가인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소년기를 긴 터널이라 생각합니다. 터널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쓰러진 친구들을 많이 봤고, 저도 그 중에 한명이었는데 선생님(배상혁 주무관)의 도움으로 터널 밖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진실한 모습으로 살면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위기청소년을 돕는 사업가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보호관찰 연장해주세요” 장관에게 편지 쓴 진실이

“김현웅 법무부장관님! 19년간을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법정에도 가고, 학교도 그만둔 일을 돌아보면 후회스럽지만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호관찰을 받으면서 배상혁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검정고시 학원 추천과 학원 반값 혜택을 지원해주셔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결과 대입 검정고시 전과목을 합격했고 지금은 간호사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만일 그 누구도 손을 안 내밀었으면 미래에 대한 의지도 희망도 갖지 않았을 겁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도 학교 자퇴하고 큰 인물이 되었잖아요. 저는 몇 년 뒤에 훌륭한 간호사가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부탁이 있습니다. 보호관찰 1년만 연장해주세요. 엄마는 몸이 아파서 비싼 학원비 부담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장관님 보호관찰 1년만 연장해 주시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9월 보호관찰이 종료된 진실이는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엄기표 판사에게 보호관찰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간호조무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아빠를 암으로 잃는 등 가정형편이 어려운 진실이는 배상혁 주무관의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간호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보호관찰이 끝나면 도움도 끝나게 됩니다.


검정고시·직업교육 지원… 꿈으로 한 발짝씩

보호관찰소의 주요 임무는 재범방지와 건전한 사회복귀입니다. 검정고시와 직업교육 등을 지원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런 도움을 잘 활용하면 소년의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장관과 판사는 진실이의 기특한 요청을 승인했습니다. 서울동부보호관찰소(소장 정택현)는 한국법무복지공단을 통해 진실이의 학원비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간호조무사가 되고 싶은 진실이의 꿈이 대단한 꿈은 아닙니다. 하지만 절박한 꿈입니다. 진실이가 직업을 갖고 알뜰살뜰 돈을 모으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병든 엄마는 덜 아플 것입니다. 세상을 망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소년범의 대부인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꿈과 희망을 빼앗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가난하다고 다 문제아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어른들의 시대는 가난한 시대였습니다. 다 가난했기 때문에 견딜 만했고, 근면 성실하면 가난에서 탈출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난이 구조화되고 세습화되고 있습니다. 소년들은 분노하고 좌절하면서 꿈과 희망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벼랑 끝 가정을 희망으로

김영호(가명·56)씨는 지난해 6월 벌금 300만원을 부과 받았지만 사업에 실패하면서 낼 형편이 못 됐습니다. 법원은 대신에 사회봉사를 명령했습니다. 240시간의 봉사명령을 받은 김씨는 출석 기일을 여러 번 어겼습니다. 그러다 배상혁 주무관에게 내민 것은 아들의 사망진단서였습니다. 20대 아들이 카드 빛에 쫓기다 투신자살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병들었고 딸은 장애인입니다.

김씨가 돈을 벌지 않으면 남은 가족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배 주무관은 일자리를 알선해주었습니다. 일주일 중 5일은 일하고 2일은 사회 봉사하도록 배려했습니다. 화급한 사정을 살피지 않은 채 법과 원칙만 요구했다면 김씨 가족은 극단적 선택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김씨는 배 주무관에게 “막막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배 주무관은 그런 사람입니다.


믿음의 공복이 가는 길

배 주무관의 어머니(평촌제일교회)께서는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아들을 학교보다 손길이 더 필요한 보호관찰소로 배치했습니다.

그는 휴일과 퇴근시간을 반납한 채 후원과 협찬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가난한 소년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국민은 공복을 원합니다. 그런데 공무원 지망생들은 안정된 직업을 원합니다. 늦깎이 공무원인 그가 돋보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공복, 한 사람의 수고와 헌신으로 소년들이 희망을 갖는 것을 보면서 믿음의 공복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가스펠 라이터 조호진(시인) jongg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