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바다 점점이 박힌 섬 보석이, 5월 경남 거제 여행

입력 2016-05-11 20:18
경남 거제시 망산 정상을 오른 등산객이 대병대도, 소병대도, 매물도 등 남해의 섬을 바라보고 있다. 망산 중턱에 자리 잡은 '병대도 전망대'에서도 다도해 풍광을 즐길 수도 있다.
구천저수지
병대도 전망대서 바라 본 남해
대금산 매미성
‘내 것은 내가, 우리 땅은 우리가 지킨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경남 거제도는 바다와 많이 접해 있다.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을 쭉 펼치면 서울∼부산 거리인 400㎞에 이른다. 바다를 많이 품은 대신 그 만큼 바다로 접근하는 외세와 자연재해의 ‘침략’이 잦았다. 왜구의 노략질에 골치를 앓는가 하면 태풍으로 인한 파도에 애써 일군 농토를 잃기도 했다. 이에 소중한 내 마을, 내 나라와 내 재산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왜구의 침입을 감시하고 어선을 보호하던 ‘망산’=남해안 일대에는 바다 조망이 시원한 곳에 ‘망산’(望山)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여럿 있다. 대부분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산도의 망산(294m)이 그렇고 여수 금오도의 망산(343.6m)이 그렇다. 하지만 거제 망산(375m)은 ‘천하일경’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절경이다.

지도에서 거제도를 보면 가장 남쪽에 좁은 병목으로 연결된 거대한 땅덩어리다. 남쪽으로 내달리는 거제의 땅은 육지로 깊이 파고든 저구리만과 다대만의 쪽빛 바다로 인해 좁아들었다가 다시 옹골차게 펼쳐진다. 그 땅의 중심에 망산이 버티고 있다. 고려 말 국운이 기울어 왜구의 침입이 잦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농축산물을 약탈하는 왜구 선박을 감시하고, 고기잡이에 나선 어선을 보호하기 위해 망을 보던 곳이다.

망산은 암봉이 많지만 숲이 우거져 있다. 길이 뚜렷하고 별 위험한 요소가 없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이정표만 따라가면 특별히 헷갈릴 곳도 없다. 망산에 오르는 길로 저구삼거리나 명사 마을이 많이 이용된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오르려면 홍포(紅浦) 무지개 마을로 잡는 게 좋다. 홍포 무지개 마을은 거제에서 떠나는 버스의 종점이자, 최근 드라이브 코스로 주목받는 여차∼홍포 해안도로의 종착점이다. 그저 평범한 해안 마을로 보이지만 망산에 오르면 ‘무지개같이 아름다운 해안’을 볼 수 있다.

무지개 편의점을 지나면 산으로 오르는 이정표가 보인다. 망산을 알리는 비석 옆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10분쯤 오르면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숲을 지나며 길이 가팔라진다. 좀더 오르면 능선 안부인 해미장골등에 올라붙는다. 망산 정상과 315봉 사이의 안부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15분쯤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정상석이 맞이한다.

널찍한 암반의 정상과 남쪽으로 깎아지른 절벽 덕분에 사방으로 조망이 빼어나다.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는 쪽빛 바다 위에 섬들이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있다. 우선 남쪽으로 홍포 무지개 해안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를 향해 길게 튀어나온 167m봉 왼쪽부터 길게 반원을 그리며 무지개 마을까지 이어진 해안은 이름처럼 동화적이다. 풍광은 167m봉 오른쪽 해안이 한 수 위다. 아담한 근포 마을 뒤로 길쭉한 장사도, 비진도, 욕지도 등 한려수도의 무수한 섬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동남쪽으로 소병대도, 대병대도, 매물도, 가우도 등의 절경이 펼쳐진다. 특히 대·소병대도 주변은 남해안 제일의 풍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당한 간격과 크기로 뿌려진 듯 펼쳐진 바다와 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맑은 날이면 대마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에메랄드빛 저구리만 뒤로 가라산(580m), 노자산(565m) 등이 첩첩이 산줄기를 이룬다. 연초록 봄빛은 산으로 오르고 있다. 눈의 호사가 꿈결 같다. 정상석에 새겨진 ‘천하일경’이란 말이 아깝지 않다.

산에 오르기가 부담스러우면 편하게 다도해 풍광을 즐길 수도 있다. 망산 중턱에 자리 잡은 ‘병대도 전망대’를 찾으면 된다. 여차 마을 쪽에서 올라 홍포 마을 방향으로 가거나 반대 방향으로 가도 된다. 도로 폭이 좁고 비포장도로도 이어진다. 전망대에서는 대병대도, 소병대도, 매물도, 소매물도, 가왕도 등을 손에 잡을 듯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다.

◇태풍에 굴하지 않는 의지와 열정의 ‘매미성’=장목면 대금리 대금산 자락에 자리잡은 복항마을에 도착하면 매미성 입구 안내표지판이 나온다. ‘차로 진입하지 말고 걸어서 가 달라’는 부탁의 글도 있다. 작고 아담한 마을 골목길을 따라 100여m를 걸어 마을 앞바다로 내려가면 바닷가에 유럽 중세풍을 닮은 성이 우뚝 서 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2000㎡(약 600여 평)의 밭을 잃게 된 백순삼씨가 그것을 복구하고자 쌓기 시작한 것이 13년째. 직장인이었던 백씨는 노후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밭을 산 뒤 주말마다 이곳에 와 농사를 지었다. 태풍으로 밭이 초토화된 뒤 어떤 태풍이 와도 견딜 수 있도록 돌로 축대를 쌓다가 성벽과 전망대 등을 조성했다. 특별한 건축기술이 없었지만 거대한 성을 만들었다.

높은 성탑이 치솟은 유럽이나 놀이동산 성의 화려함은 없지만 해변을 따라 120∼130m 이어진 성곽의 위용과 견고함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자연재해를 이기려는 한 사람의 의지와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성 위에 올라서면 바다 너머 거가대교 등이 한눈에 잡힌다. 웅장한 자태와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모습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예비 신랑신부의 웨딩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거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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