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청소는 20세기 초까지 구미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겐 좋은 돈벌이였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오랜 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좁은 공간에서 구부린 자세로 일하느라 척추 변형, 성장 저하를 겪고, 눈을 비벼대 맹인이 되기도 했다. 폐에 분진이 들어가 폐렴, 폐암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좁은 굴뚝에서 거의 벌거벗고 청소하다보니 각종 피부질환과 피부암, 고환암도 앓게 되었다. 결국 아이들이 굴뚝 청소를 못하게 하는 법이 생겼다.
이와 유사한 직업병 중에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걸리는 진폐증, 건축 재료에 들어가는 석면에 의한 석면진폐증 등이 있다. 모두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병이다. 석면에 노출된 광부들이 폐질환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관찰한 의사들의 논문이 이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석면은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목재 가옥을 콘크리트로 바꾸면서 열효율이 좋다는 석면을 권장하기도 했다. 불도저로 미는 식의 재개발 방식이 위험천만한 이유 중 하나다.
석수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폐질환이 생긴다는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기록에 등장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원인이 확실하게 밝혀지고 규소에 의해 폐가 굳어간다고 해서 규폐증이라 이름 붙이게 된 것 역시 19세기 이후였다. 규소(Silica)는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많은 광물이라 땅을 파거나 돌을 쪼면서 미세한 입자로 공기 중에 날아다니다가 인간의 폐로 들어가 규폐증을 앓게 한다. 일단 폐에 규폐증, 진폐증이 생기면 되돌리는 완치란 있을 수가 없어 대증적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질환 역시 아산병원의 홍수종 박사팀이 광범위한 역학조사와 실험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할 때까지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 내에서 생기는 특발성 폐질환이거나 다른 환경물질에 의한 질환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호화 변호인 군단을 꾸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 영국의 글로벌 기업과 어렵고 끈질긴 법정 싸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벌써부터 미세물질과 병균 등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강변한다는 소식도 들려 걱정이다.
일본의 원자폭탄 후유증,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고엽제 등 화학물질과 관련된 질병의 사회사를 짚어나가다 보면 인간의 무지, 게으름, 탐욕에 대해 다시 한번 통렬하게 반성하게 된다. 위험하고 더러운 사지에 어린아이나 하층민 등 약자를 내모는 잘못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으니 인간 내면에 숨은 ‘악’의 존재가 얼마나 질기고 힘이 센 것인지!
천상병 시인은 ‘한 가지 소원’이란 시에서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라고 썼다. 독재정권으로부터 심한 고문을 당하고 병으로 고생하다 하늘나라로 떠난 시인의 혜안이 서늘하다.
새 물질이 발명되면 그 때문에 또 새 질병이 생길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포장을 쓴 자본주의가 인간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철저한 윤리적 검증을 받지 않는 과학과 기술이 재앙으로 변한 과학사적 사실들은 차고 넘친다. 근대화가 이뤄진 지난 100년간 우리 사회는 규폐증, 진폐증, 고엽제 등 환경질환에 대해 너무 무심했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희생자들의 고통이 또 다시 무의미하게 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보상이 있어야겠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청사초롱-이나미] 과학과 기술이 재앙 안 되려면
입력 2016-05-10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