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를 위한 약속’] 학교 못가고 방치됐던 아이들 ‘주사랑 손길’에 꿈 활짝 펴다

입력 2016-05-10 21:46
필리핀 민다나오섬 키다파완 시에 있는 기아대책 CDP 센터에서 지난 1일 주사랑 기대봉사단과 공동체 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힘차게 점프한뒤 활짝 웃고 있다(위쪽). 주일학교에서 성경 속 장면 그림을 색칠한 뒤 보여주는 어린이. 이렇게 1년간 색칠한 그림들을 모아 자기만의 ‘그림 성경책’으로 만들어준다.
지난달 29일 기아대책 CDP 센터에서 영어 수업을 듣고 있는 CDP 아동들.(위) CDP 센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교사로 봉사 중인 청년들이 식사 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올해는 유엔이 천명한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행 첫해다. SDGs는 2030년까지 빈곤퇴치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가 다같이 힘을 모으는 전 지구적 캠페인이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 유원식)은 ‘떡과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 위에 SDGs에 부합하는 사역 방향을 정하고 본부와 현장이 하나 돼 뛰고 있다. 국민일보는 기아대책이 올해 중점 추진하는 ‘다음세대를 위한 약속’ 캠페인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필리핀 민다나오섬 키다파완 시에 있는 기아대책 CDP(Children Development Program·어린이 개발 사업) 센터. 지난달 29일 다바오 시에서 차로 세 시간 달려 도착한 이곳은 주사랑(가명·51) 기대봉사단이 일궈놓은 사역장이다. 너른 마당 가운데 공장을 개조한, 지붕만 얹은 시설물이 있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성경구절이 영어로 적힌 작은 집은 숙소 건물이다. 마당 곳곳에 들어선, 한국의 옛 시골 원두막 같은 시설이 교실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10여명의 청년들과 학생 600여명이 성경적 세계관 교육을 통해 거듭나고 있는 키다파완 CDP 센터의 전경이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하루 한 끼 제대로 먹기 힘든 아이들에게 교육은 사치나 다름없다. 파인애플이나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해 하루 먹고 사는 부모들은 교육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기아대책의 후원으로 아이들은 학교에 육성회비를 내고, 학교 준비물을 마련한다.

따로 놀 공간이 없는 아이들에게 CDP 센터는 배움터이자 놀이터다. 작은 미니버스를 타고 5∼20분 걸리는 동네의 아이들이 찾아온다. 벤셀르 멜로디아(9)양은 “간식도 먹고, 학교 공부도 먼저 배우고, 친구들과 놀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멜로디아와 친구들에게 이곳에서 무얼 배우냐고 묻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법, 부모님 공경하기, 책임감”이라고 큰 목소리로 답했다. 비가 와서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되면, 아이들은 진흙 범벅의 길을 걸어서 이곳까지 온다.

이 지역에선 방치된 저소득층 자녀들이 마약이나 절도, 성범죄 등에 연루되는 일이 흔하다. 로델 클로스(19)군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손을 씻고 범죄에서 벗어났다. 공동체 생활 선배이자 무슬림 청년인 메주운(가명·38)이 로델을 이끌었다. 글을 읽지 못해 번번이 낙제하던 로델은 CDP에서 공부하며 글을 떼고, 고등학교에 다닌다. 동네에서 소문난 말썽꾼 아들 때문에 목회자인 아버지가 목회를 중단할 정도로 엉망이던 가정도 달라졌다. 로델의 어머니는 “이곳이 아니었다면 우리 아들은 물론 우리 가정의 삶도 어찌 됐을지 모를 일”이라며 활짝 웃었다.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을 일깨워

주 봉사단은 20년 전에 민다나오로 왔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필요를 채워주는 물질적 지원으로는 지속적인 개발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이들의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도 옆에 있는 이 지역은 더운 나라 특유의, ‘오늘 하루 즐겁게 지내면 된다’는 사고관을 갖고 있다. 스페인에 이어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가톨릭 인구가 80%를 웃돌지만 도덕관이나 윤리관도 부족하다.

그는 성경적 세계관 교육에서 답을 찾았다. CDP 센터 아이들은 대다수가 주일 예배에 참석한다. 그는 ‘다윗과 골리앗’처럼 유명한 성경 속 인물과 장면을 연극으로 보여주는 드라마 예배를 도입,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통치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복음의 틀이 아니라 복음의 속성을 통해 아이들을 키워낸다”며 “천하보다 한 영혼이 소중하다는 성서적인 세계관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자존감을 찾고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눈에 띄게 밝아졌고 학업성취도도 높아졌다. 시부 초등학교 에스텔라 시낭(56·여) 교장은 “CDP 결연 학생들은 빈곤한 처지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신있게 학교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너희는 소중한 존재’라고 가르치지 않는 곳에서,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을 깨달은 아이들은 눈빛부터 달랐다.

교사들이 기독교 세계관 씨앗을 뿌리다

CDP 센터의 교사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양육된 대학생들이다. 주 봉사단과 가족공동체 사역을 통해 인연을 맺은 교사도 있고, CDP 센터에서 교육받던 학생 출신의 교사도 있다.

데이지(가명·27·여)씨 가족은 2003년 외할머니와 주 봉사단과의 인연을 계기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초기 멤버다. 가난한 어부로 살던 아버지는 그물을 내려놓고 공동체에 합류했다. 데이지와 자매들도 매주 예배드리고, 매일 밤 헌신의 시간을 통해 성경적 세계관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진짜 예수님을 만났다”며 “나를 비롯해 여동생까지 칼리지를 졸업해 교사자격증을 따고, 우리 가족이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게 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심을 믿게 됐다”고 했다. 그는 가장 큰 변화를 묻는 질문에 “그날그날 나만 생각하며 살던 내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삶,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3년 전부터 인근 무슬림 지역의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민다나오섬은 ‘이슬람 선교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다. 아시아로 확산되던 이슬람이 가로막힌 곳이라 무슬림들의 피해의식이 크고 뿌리도 깊다. 토착 부족민 중심의 무슬림 자치구는 필리핀 정부의 통치가 미치지 못해 폭력이 난무한다. 그는 “어쩌면 내가 여기에서 죽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두려웠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내 삶과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무슬림 학교까지 사랑으로 품다

데이지보다 먼저 무슬림 지역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던 교사 시바(가명·61·여)씨. 남편에게 구박받던, 보잘 것 없던 아줌마였지만 주 봉사단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40대에 대학을 가고 52세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무슬림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는 삶을 살아가는 상징적 인물이다. 시바씨는 “무슬림은 알라에게 복종하며 알라를 두려워할 뿐,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다”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살라고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주 봉사단은 시바와 데이지를 통해무슬림 지역 공립학교에 성경적 세계관을 연구하는 교사 세미나 모임을 세웠다. 이들은 2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배우는 이의 7가지 법칙’등 티칭 기술과 더불어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받았다. 무슬림이지만 종교를 뛰어넘어 통합교육에 관심을 가진 교사 10여명이 함께 하고 있다.

주 봉사단은 3년 전부터 교사들이 소속된 학교의 학생들이 기아대책 CDP와 결연을 맺도록 했다. 기아대책은 학교에 화장실을 새로 짓고 학교 건물을 고쳐줬다. CDP 후원 아동들에겐 육성회비와 학교 준비물을 제공했다. 폐쇄적인 지역의 무슬림 아이들이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에 참여하고, 영어 말하기 대회, 지역 수영대회에도 참여했다. 교육여건이 좋아지면서 고등학교가 새로 세워졌다.

이를 통해 무슬림 특유의 조혼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 공동체 출신의 교사 데이비드(가명·38)씨는 “초등학교 졸업식 때면 이제 시집가야 되냐며 울던 여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교사나 요리사 등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초등학생 중 22%만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던 지역이었는데 3년 만에 90% 이상 진학하게 됐다. 데이비드씨는 “사랑, 희망, 의미 있는 삶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이 종교를 뛰어넘어 효과를 거둔 것 같다”고 말했다.

키다파완(필리핀)=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