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카터, 박정희에 “핵무기 관심 꺼라”

입력 2016-05-11 04:02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1979년 6월 30일 청와대 단독정상회담을 백악관 측이 기록한 회의록. 박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이 북한의 군사력 우위 원인을 놓고 설전을 벌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 출처=미국 디지털 국가안보 기록보관소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6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을 향해 “당신이 주한미군 철수 정책을 채택한 1977년 이후 북한의 군사력은 크게 강화됐고 아시아에서 소련의 군사 능력은 매우 증강됐다”고 직격탄을 쐈다.

이에 카터 대통령은 “우리는 한국 전체 병력의 0.5%에 해당하는 약 3000명(정확히는 3400여명)의 병력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미래 안보와 이 작은 숫자의 병력을 동일시하는 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박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이 당시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거친 설전을 벌였던 사실이 10일 확인됐다. 국민일보는 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 회의록이 담긴 백악관 기밀해제 문서를 입수했다. 한·미 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면서 “우리는 미국이 전쟁이 발발한 뒤 도움을 주기 위해 오는 것보다 전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카터 대통령은 “우리의 정보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군사 지원이 최근에는 매우 적다고 한다”며 남한이 미국의 막대한 군사 원조를 받고도 북한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남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감정싸움이 펼쳐졌다. 카터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데 활용했던 긴급조치 9호 해제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소련군이 땅굴들을 파고 DC(워싱턴)에 특공대를 투입한다면 미국 국민들의 자유도 제한받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카터 대통령은 “핵 원료의 향후 공급에 대한 당신의 관심이 줄어들기를 희망한다”면서 박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의도에 공개적으로 쐐기를 박았다. 이에 박 대통령이 “우리는 당신 정부와 충분한 사전 협의를 요구했다”고 말하자 카터 대통령은 “당신은 핵무기에 대해 말한 건가”라고 쏘아붙이듯 물었다. 박 대통령은 “아니다. 원자력 발전이다”라고 물러섰다.

또 카터 대통령은 “북한은 군사력 증강에 국민총생산(GNP)의 20%를 쓰고 있다”면서 남한의 군사비 확충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며 “우리가 GNP의 20%를 국방비에 쓴다면 즉시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살얼음판을 걸었던 카터 행정부 시기 한·미 관계는 최근 미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주한미군 등 한국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현재 상황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