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튀겨왔습니다. 카드 결제됩니다.” 지난 4일 오후 5시30분쯤 경기를 앞둔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관중은 먹을거리를 양손 가득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즐거운 표정 사이로 아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단속원에게) 8마리를 뺏겼습니다. 치킨 없으니 더 보내주세요.” 시무룩한 표정의 한 알바생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그사이 다른 알바생은 목청껏 호객행위를 했다. 풀죽은 목소리와 손님을 부르는 고함소리의 주인공은 ‘치킨 삐끼’다. 이들은 미리 포장해 온 치킨을 야구장 주변에서 판다. 다만 야구장 출입로와 바깥 인도의 경계에 둘러쳐진 나무울타리를 넘으면 안 된다. 나무울타리 안쪽은 ‘야구장’으로 간주돼 단속 대상이 된다.
최근 ‘치킨 삐끼’를 둘러싼 갈등이 뜨겁다. 단속을 하는 쪽의 명분과 단속을 당하는 쪽의 항변이 뒤엉켜 있다. ‘치킨 삐끼’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단속을 하는 쪽은 ‘치킨 삐끼’를 불법 상행위로 본다. 잠실야구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는 “야구장 안에 입점한 상인들의 상권 보호, 질서 유지 차원에서 지난달 초부터 치킨 삐끼를 단속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평일에 3명, 주말에 4명의 용역을 고용해 야구장 주변을 감시하고 있다. 나무울타리를 안쪽에서 영업을 하면 치킨을 빼앗은 뒤 경기가 끝나면 돌려준다.
사업소 관계자는 “어떻게 해도 치킨 삐끼가 정당화될 수 없다. 안에서 임대료 내고 장사하는 상인들 민원도 있고, 인근 지하철 2호선 신천역에서 장사하는 치킨 가게들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소는 지난달 초에 송파경찰서와 송파구청에 ‘야구장 앞 불법 상행위 단속에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치킨 삐끼’만 단속 대상은 아니다. 허가 없이 응원도구를 판매하는 이들도 단속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들은 고까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소비자들 편의와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야구장을 찾은 이태관(18)군은 “길에서 파는 치킨이 사먹기에 편리하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야구장 안의 치킨가게와 가격경쟁도 돼서 소비자 측면에서 이득”이라고 말했다. 조형빈(14)군은 “야구장 안은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한다”며 “아예 밖에서 파는 치킨을 허용하면 더 믿고 사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치킨 삐끼’들은 생계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8년째 야구장 앞에서 치킨을 팔았다는 박모(34)씨는 “이것도 한철 장사고, 여기서 이렇게 팔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 다들 생계 때문에 몇 년째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치킨 한 마리를 1만5000원에 팔면 배달료와 수수료를 포함해 4000원 정도가 ‘치킨 삐끼’ 몫이다. 한 달에 150만원가량 되던 수입은 단속이 시작된 뒤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상권 보호와 관람객 편의 사이에서 접점은 없을까. 법과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야구장 ‘맥주보이’(이동식 맥주 영업)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세청은 지난달 21일 ‘맥주보이’를 규제하기로 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철회했다. 정부는 ‘일반음식점 영업신고를 한 사람이 제한된 야구장 내에서 입장객을 상대로 음식을 현장 판매하는 행위가 가능하다’고 맥주보이를 허용했다. 이 논리를 적용하면 경기장 밖 치킨 판매도 제한된 공간에서 허용할 수 있다는 해법도 가능한 셈이다.
글·사진=심희정 임주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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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1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