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냐 대출이냐… 과거 구조조정 해법 보니… 한은, 25년간 대출 치중했었다

입력 2016-05-09 19:10 수정 2016-05-09 21:51
한국은행이 또 고민에 빠졌다. 한은은 오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정부발(發) 국책은행 자본확충 요청에 어떻게 화답할지 논의한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정부의 경제정책을 뒷받침해야 하는지는 언제나 논란거리였다. 이번에도 해운·조선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을 한은이 직접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출자해 마련해주길 정부는 희망하고 있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한은의) 손실 최소화를 위해선 출자보다 대출이 낫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한은과 정부 간 정책 줄다리기를 이해하려면 우선 한은법을 살펴봐야 한다. 한은법 3조는 “통화신용 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며 한은이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4조에서는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루라고 명시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만큼이나 정부 정책과의 협조도 강조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은의 발권력이 필요할 때마다 초기에는 정부와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결국엔 협조하는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에도 직접 자금 출연보다는 대출을 선호했다. 한은의 직접 출자는 화폐 발행에 따른 자본확충의 효과를 특정 업종의 특정 기업이 누리는데 반해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손해는 모든 국민이 감수해야 한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한은은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책임소재를 가리고 자금 회수가 상대적으로 쉬운 대출 방식을 선호해 왔다.

한은은 지난해 8월에도 산은에 3조4300억원을 대출해 줬다. 당시에는 회사채시장 정상화를 위해 한은이 나서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였다. 이때도 정부는 한은에 자금 출연을 요구했지만 한은은 대출로 하겠다는 뜻을 관철했다. 그 돈으로 산은은 중소기업 대출을 돕는 신용보증기금에 500억원을 출연할 수 있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은은 산은에 자본확충펀드 3조2996억원을 지원했다. 무상이 아니고 4%대 금리로 자금을 지원해 펀드가 은행의 채권 및 증권을 매입하도록 했다. 이때도 명분은 ‘금융 불안에 대한 선제적 대비’로 지금의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비슷한 이유였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에도 한은은 유동성 지원 명목으로 시중은행과 종합금융회사에 8조원이 넘는 자금을 특별대출했다. 1992년엔 한국·대한·국민 등 3대 투신사 경영 악화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차단을 위해 역시 2조9000억원을 빌려준 뒤 약 3년 후 자금을 회수한 바 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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