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車)에서 커피를 마시는 코미디언들’은 미국 인기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트가 진행하는 신개념 토크쇼다. 2016년 새해를 앞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사인펠트와 1963년형 은청색 코베트 스팅레이 차량을 타고 백악관 주변을 돌았다. 사생활을 공개하며 특유의 입담도 과시했다. 오바마는 지난해 6월에는 코미디언 마크 마론이 자택 차고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했고,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가 메릴린 로빈슨과도 그해 9월 격의 없는 대담을 나눴다.
대중과 접촉하면서 그에게 장소와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지층을 타깃으로 하거나 정치 메시지나 정책을 들려주려 하지 않는다. 학식이 많은 인물로 국한하지도 않는다. 대화 주제는 서로 관심을 둘 만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임기 8개월을 남긴 그의 새로운 소통법이다.
너무 인기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에 오바마는 응수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흥미와 영감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행동에서 배울 수 있고 세상에 대한 가르침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참모의 배경 설명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더 트인 방식으로 생각을 얘기할 기회를 대통령에게 주고 싶다.” “반드시 톱뉴스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들을 국민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정적(政敵)과의 대화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골프광’답게 정쟁 해소와 현안 논의를 위해 골프 회동을 하고 만찬과 전화통화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주 접촉하는 인사는 야당인 공화당의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다. 그의 별명은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당 ‘다스베이더’다. 그만큼 냉혹하다는 얘기다. 그런 그에게 오바마는 “당신 지역구(켄터키주)에서 유명한 버번위스키 한잔하자”고 제안한다. 대통령이 술 한잔하자고 하는 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바마의 인기는 높아만 가고 있다. 최근 그의 지지율은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임기 만료가 다가올수록 지지도가 상승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마이티 덕(mighty duck·강한 오리)’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군대로 치면 ‘말년병장’인 오바마의 이런 비결은 역시 무차별적이고 전방위적인 소통일 게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1년9개월이나 남았다. 제대를 한참 앞둔 ‘말년상병’이지만 지지율은 30%대 초·중반에 불과하다. 4·13총선 직후에는 20%대까지 주저앉기도 했다. 여소야대로 재편되면서 ‘조기 레임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소통 미흡’이 꼽힌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박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에서 45개 중앙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하지만 40여명이 모여 밥 먹는 자리에서 제대로 된 토론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유명 칼럼니스트 7∼8명을 초청해 오랜 시간 난상토론을 즐기는 오바마와 사뭇 비교된다.
총선 후 박 대통령은 민의를 받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와대에서 벗어나 민심의 광장으로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매일 밤 참모들이 올린 보고서에 묻혀 사는 대통령이 민심을 정확히 읽기는 어려운 법이다. 미국과는 문화가 다르고 정치가 다르다고 치부할 시대는 지났다.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의 생각을 이해하고 서슴없이 다가가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톱뉴스만 고집하지 않는 참모도 보고 싶다. 그래야 대통령의 ‘말년’이 행복해지고 국민이 행복해진다.
김준동 사회2부장 jdkim@kmib.co.kr
[돋을새김-김준동] 말년병장 오바마, 말년상병 박근혜
입력 2016-05-09 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