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신념을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되며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진보주의는 옳고 반공주의와 보수주의는 틀렸다는 소신이 흘러넘쳤다. 겉으로는 진보주의자요 속으로는 공산주의자였던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의 전기영화인 ‘트럼보(2015)’ 얘기다.
영화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 논쟁은 그만두자. 내가 이 영화에서 착안한 건 과연 가정, 가족의 가치와 모럴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트럼보는 매카시즘에 휩쓸려 할리우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후 일거리가 끊긴다. 그는 대량으로 허접한 시나리오를 써서 싸구려 영화사에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려니 가정사에 소홀해질 수밖에. 그런데도 처자식들은 그가 가족에게 무관심하며 폭군 같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이게 정상적인 가정인가.
영화 ‘굿 킬’에서 주인공 토머스 이건 소령은 비록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출퇴근은 할망정 대테러 전쟁을 치르는 군인이다. 그러나 엄마 대신 아이들을 하교시키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아내한테 야단맞는다. 나중에는 아내에게 버림받기까지 한다. ‘가정에 소홀했다’는 게 그 이유다.
많은 미국 영화들에 따르면 가장은 남편, 아버지 노릇 하는 게 그 무슨 일보다 우선이다. 공적인 사회생활보다 아이들 학예회나 운동시합 참관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특별행사’가 아니더라도 퇴근만 했다 하면 집으로 달려와 마누라 비위를 맞추거나 애들과 놀아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간 이혼 당하기 일쑤다.
도대체 가족들 먹여 살리려 바깥에서 시달리다 가정이랍시고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줘야 할 가족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런 것이 미국 대중문화, 특히 영화가 허구한 날 강조하는 ‘가정의 소중함’이요 ‘가족의 가치’인가. 가정 해체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각에서 가정, 가족 제일주의가 강조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처자식 위주여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69> 가족이란 무엇인가
입력 2016-05-09 2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