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레킷벤키저(옥시) 의뢰로 서울대 수의과학대 조모(57·7일 구속) 교수팀이 진행한 흡입독성 시험에서도 가습기 살균제와 폐 섬유화가 연관됐다는 일부 증거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연구 책임자 조 교수가 실험 데이터를 고의 누락한 채 폐 병변(病變) 관련성을 부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검찰은 본다.
8일 검찰에 따르면 조 교수는 2011년 9월 옥시와 계약을 맺고 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 시험을 하면서 실험조건을 왜곡했다. 수돗물만을 분무한 대조군과 수돗물에 가습기 살균제를 각각 0.5%, 1.0%, 2.0% 넣은 저·중·고농도 시험군을 설정했다. 각 시험군에는 암수 각각 10마리의 쥐가 투입됐다. 그런데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쥐를 투입해 시험군은 물론 대조군에서도 폐 섬유화가 발견됐다. 실험 환경이 부적절했고, 대조군과 시험군에서 모두 폐 섬유화가 발견됐다면 가습기 살균제와 폐 섬유화 사이 인과관계에 대한 병리적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조 교수는 “살균제에 의한 독성학적 변화로 판단할 두드러지는 차별적 병변은 관찰할 수 없었다”는 보고서를 만들어 옥시에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 교수는 구속되기 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유서까지 남기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살균제 유해성을 경고했는데도 옥시 측이 실험 결과를 짜깁기 했다는 게 조 교수 주장이다.
검찰은 9일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소환한다. 조만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기초 수사를 마무리하고 가습기 살균제 개발·판매에 관여한 제조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단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될 경우 폐손상 위험도가 116배에 이른다는 보건 당국의 연구 결과가 3년 만에 뒤늦게 해외 학술지에 공개됐다.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이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3월 18일자에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폐손상 위험이 116배 더 높았다. 질본은 2013년 가습기 살균제로 폐가 손상된 환자 16명과 같은 지역에 사는 일반인 60명을 비교하는 역학조사를 실시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질본 관계자는 연구결과를 3년이나 늦게 공개한 이유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관련성은 이미 발표한 것이었다”며 “일반인 대상 실험은 이를 내부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2차 조사여서 공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용택 권기석 기자 ny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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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연구팀, 가습기 살균제 독성시험서도 ‘폐 섬유화 확인’
입력 2016-05-08 18:33 수정 2016-05-08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