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뉴삼성’ 밑그림 그리기 일단 성공

입력 2016-05-08 17:39 수정 2016-05-08 21:41


2014년 5월 10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이 뜻하지 않게 그룹의 전면에 나선 지 2년이 됐다. 재계 일각에서 ‘준비되지 않은 황태자’라고 우려했던 이 부회장은 그러나 2년간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삼성 체질 개선에 나섰다. 부친이 경영할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부 계열사의 신속한 매각과 ‘전자·바이오·금융’ 중심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뉴삼성’의 밑그림을 성공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경영 역량을 평가하기에는 2년의 시간은 아직 부족한 만큼 이 부회장이 장기 저성장 시대에 패스트 무버(창의적 선도자)로서의 비전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열사 잇단 매각과 변화에 재계 술렁=삼성은 2014년 11월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등 화학·방산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 부회장의 삼성 설계도를 엿볼 수 있는 단초이자 그룹 패러다임의 변화를 대내외에 공포한 상징적 사건이다.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를 판다는 것은 과거 업계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경제 호황기에 다각화 다변화 경영을 통해 사세를 확장했던 할아버지(이병철 선대회장)와 아버지 경영전략에 마침표를 찍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업 재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 분위기다. 삼성은 지난해 10월 화학 3개 계열사를 롯데에 매각했으며 최근에는 광고업계 1위인 제일기획 매각설도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주택 브랜드 1위인 삼성물산 주택사업부문, 삼성중공업 등도 매각 리스트에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는 계열사들이다. 2년 새 삼성로고가 빠진 업체만 7곳이다.

하지만 이재용호는 슬림화에만 주력하지는 않았다. ‘전자, 바이오, 금융’이라는 삼두마차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을 통해 미래 삼성이 가야 할 방향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전장사업부를 신설하면서 2000년 삼성자동차 매각 이후 터부시된 자동차 관련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성큼 다가온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에 삼성의 역량을 펼 분야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전략이다.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삼성바이오로직스)과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 개발(삼성바이오에피스)이라는 투트랙 투자도 조금씩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또 글로벌 금융 업계 경영진을 잇따라 만나며 핀테크(금융+IT) 사업 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8일 “이 부회장 체제가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삼성을 탄생시키며 대내외 위험상황을 안정적으로 헤쳐나가고 있다”며 “사업 재편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 시도가 일관되게 추진된다면 이 부회장의 기반이 탄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도 속도…‘패스트 무버’ 역량 필요=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에 선임되면서 사실상 그룹 승계가 공식화됐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생명 지분 2.18%, 삼성문화재단은 생명 4.7%·화재 3.1% 등의 지분을 갖고 있는 등 그룹 지배구조에서도 중요한 곳이다.

여기에 헤지펀드인 엘리엇과 분쟁을 겪으면서까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밀어붙여 그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합병으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및 삼성생명 지분 각각 4.1%와 19.3%를 보유한 2대 주주가 됐고 이 부회장은 이런 삼성물산 지분 16.4%를 확보해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경영전략의 변화와 안정적인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 부회장은 삼성 리더로서 연착륙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다만 2년의 기간이 사업체계 개편과 그룹 관리에 방점이 찍혀있었다면 향후에는 신사업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하고 이를 위해 이 부회장 등 경영진의 혁신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 부회장이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적응하려한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무리한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을 보면 여전히 이재용 핵심참모그룹이 변화에 수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바이오 등의 투자도 기존보다 약간 변화를 주는 형식이어서 글로벌 경기침체를 타개할 만한 패스트 무버의 진취적 움직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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