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재임 사우디 석유장관 해임… 왕자표 脫석유개혁 시동

입력 2016-05-09 04:00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빅 마우스’이자 수십년간 국제유가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이브라힘 알나이미(81·사진) 석유장관이 전격 해임됐다. 1995년 석유장관에 임명된 지 21년 만의 교체다.

살만 사우디 국왕의 아들이자 ‘실세’인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31) 왕자(제2왕위계승자)가 석유 통제권 및 국가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망신’에 가까울 정도로 쫓아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살만 국왕은 7일(현지시간) 석유부의 명칭을 에너지·산업광물부로 바꾸고, 신임 장관에 보건장관 겸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회장인 칼리드 알팔리(56)를 임명했다. 또 하지(성지순례)부 장관을 비롯해 모두 6명의 장관을 교체했다.

이번 개각은 지난달 25일 알사우드 왕자가 발표한 탈석유시대를 표방한 ‘비전 2030’을 실천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비전 2030은 아람코 지분(5% 이내)을 매각해 2조 달러(2300조원)의 국부펀드를 조성한 뒤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꿔나가는 계획이다.

신임 알팔리 석유장관은 전문경영인으로 30년간 아람코에서 일했다. 아람코 대표이사이던 지난해 5월 보건장관으로 입각함과 동시에 아람코 회장을 겸임해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개각이 알사우드 왕자가 자신이 최고위직도 언제든 경질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차원이자 아람코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취지라고 분석했다. 알나이미는 그동안 석유정책이나 아람코 경영과 관련해 정부나 왕실의 다른 멤버들의 ‘입김’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때문에 알사우드 왕자는 아람코 경영을 보다 투명화해 해외시장에 상장한 뒤 국부펀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이런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려고 알나이미를 단칼에 쳐냈다는 것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에너지 담당 고위 관료를 지낸 데이비드 골드윈은 NYT와 인터뷰에서 “평생을 헌신해온 알나이미를 아주 불명예스럽게 퇴진시켰다”면서 “사우디 내부 관행에 비춰서도 극히 무례한 경질”이라고 진단했다. 알나이미는 OPEC 회의는 물론, 회의 뒤 기자회견까지 주도해 수십년간 그의 말 한마디에 따라 국제유가시장이 출렁거렸었다.

아울러 핵심 장관을 80대에서 50대로 낮춤으로써 보다 ‘젊은 사우디’로 국가를 바꿔나가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알사우드 왕자는 2000만 인구 중 3분의 2가 30세 이하인 점을 감안해 ‘엔터테인먼트 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젊은이들을 겨냥한 정책을 적극 추진해 왔다.

알사우드 왕자의 측근이 석유장관에 기용됐기에 당분간 석유 정책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사우디의 ‘증산 정책’이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산유국 회의에서 산유량 동결이 합의되기 직전 무산된 배경에 알사우드 왕자가 있다”면서 “그의 증산 의지가 향후 사우디 석유정책에 계속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문에 산유량 동결 합의가 앞으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