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 빨강, 파랑, 노랑의 세 가지 원색이 있다면 조각에는 돌, 철, 나무의 세 가지 재료가 있다. 깨고 두드리고 깎아내는 조각 작업은 인고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까닭에 조소과를 나와도 설치나 영상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작가들이 많다. 오로지 한길을 걸어오면서 각자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세 조각가의 전시가 나란히 열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행복한 표정의 동물 돌조각 한진섭=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40년 넘게 돌만 다루었다. 강아지와 호랑이 등 동물가족을 따뜻하면서도 행복한 캐릭터로 표현했다. 단순한 형태와 돌의 질감을 살린 조형미는 돌 조각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그의 작품은 프랑스 파리 대통령궁에 소장되는 등 글로벌 작가로 우뚝 섰다.
서울 용산구 인터파크씨어터의 네모갤러리 야외에서 29일까지 ‘파한(破閑·한적함을 깨뜨리다)’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에 대형 강아지 ‘생생(生生)’을 내놓았다. 1년2개월 동안 돌을 깨고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강아지가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작가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생명 순환의 근본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철조각 최태훈=경희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철 작업을 40년 가까이 했다. 차가운 금속에 따스한 빛을 넣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숲, 인체, 우주 등 이미지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존재와 소멸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꽃다발이 폭죽처럼 터지는 그의 ‘부케’ 작품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에 설치돼 있다.
네모갤러리 실내에 철사로 한 폭의 수묵화처럼 표현한 ‘숨(breath)’ 시리즈를 선보인다. 철사의 단면들은 반짝이는 별이기도 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씨이기도 하고, 절규하는 인간의 손짓이기도 하다. 작가는 2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리면서 그라인더에 얼굴이 베이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숱한 역경을 거친 결과 ‘생명의 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털실 뭉치 모양의 나무조각 이재효=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25년간 나무조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의 작품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호텔, 중국 상하이 하얏트호텔, 스위스 제네바 인터콘티넨털호텔 등에 소장돼 있다. 그는 마치 목수와 같다. 통나무를 자른 뒤 나사못으로 고정시켜 표면을 매끈하게 한 뒤 둥근 공이나 털실 모양의 작품을 만든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성남아트센터에서 7월 3일까지 ‘Walking with Nature(자연과 함께 걷다)’라는 타이틀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조각 130여점, 드로잉 400여점을 내놓았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나무조각 외에도 낙엽과 돌을 철사에 발처럼 묶어 늘어뜨려 만든 45m 통로, 5m의 금강송을 그을린 뒤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못으로 박은 작품 등이 전시된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돌·철·나무 조각의 진면목 감상하세요… 외길 조각가 3인 나란히 전시회
입력 2016-05-08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