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의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거부했다. ‘아버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는 발끈했다. 미국 현대사에서 대선 후보가 소속 당 하원의장과 전직 대통령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기는 처음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라이언은 5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현재로선 그럴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공화당은 링컨과 레이건을 배출한 정당”이라며 “대선 후보는 당의 원칙을 준수하고 미국인에게 설득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라이언은 그동안 트럼프의 핵심공약이 공화당의 노선과 다르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반대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하는 트럼프를 낙마시킬 생각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이슬람교도의 입국금지를 주장하자 “보수의 가치도 아니고 미국의 가치도 아니다”라고 비난했고, 백인우월주의단체 KKK의 지지를 받자 “공화당 후보가 되려는 사람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라이언의 트럼프 지지 거부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미 지지를 선언한 공화당 지도층 인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는 인디애나 경선 직후부터 트럼프를 돕기로 했고, 레인스 프리부스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트럼프를 중심으로 당이 뭉쳐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라이언의 지지 거부에 앞서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는 전당대회 불참을 선언하며 “올해는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트럼프 지지를 거부하며 전당대회에 가지 않기로 했다. 롬니는 지난 3월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트럼프는 사기꾼이다.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2008년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마지못해 트럼프를 돕기로 했지만 전당대회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지역구 애리조나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히스패닉 유권자가 30%인 이곳 애리조나에서는 목숨을 걸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라이언의 CNN 인터뷰가 방송되자 곧바로 성명을 발표하고 “나는 라이언의 어젠다를 지지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불쾌해 했다. 그는 다음주 워싱턴DC를 방문해 의원들을 만날 예정이지만 공화당 하원의원 총회에서의 연설은 무산됐다. 하원을 장악한 라이언의 반대 때문이다. 대선 후보가 의원총회 연설을 못하는 것도 처음이다.
오는 7월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의장을 맡을 라이언과 후보로 지명될 트럼프의 갈등은 당의 정강정책과 대선 공약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충돌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관련기사 보기]
美 공화당 1인자 라이언·부시 父子, 트럼프 지지 거부
입력 2016-05-07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