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독특한 기관이다. 법적 설립 근거부터 낯설다. 한국은행법 2조에 명시된 법인격은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상법상 법인은 반드시 자본금이 있어야 함에도 예외적이다.
한은도 출범 당시에는 자본금이 있었다. 1950년 5월 제정된 한은법 4조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자본금은 15억원으로 하고 전액을 정부가 출자한다’고 돼 있다. 62년 5월 1차로 한은법이 개정되면서 이 조항이 바뀌었다. 정부 출자 특수법인에서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변경된 것이다. 정부 돈이 바탕이 되면 권력에 휘둘리게 돼 발권력이 남발되는 등 독립성이 흔들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법인격은 한은법 1조 ‘설립 목적’, 3조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함께 한은을 지탱하는 정신이다.
정치적 독립에 대한 한은 직원들의 각오는 무척 단단하다. 내가 한은을 맡았던 90년대 후반 한은은 새 출입기자가 오면 한 달 정도 기본적인 경제 공부를 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경제이론은 물론 한은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주입식(?) 교육에 특히 주력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한은법 개정이 현안으로 떠오르면 거의 모든 출입기자들은 한은의 논리를 옹호하는 기사를 썼다. 신문사에서 한은 주장에 반대하는 경제부처를 출입하는 동료들과 언성을 높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음 달이면 설립 66주년을 맞는 한은의 역사는 중앙은행 독립을 둘러싼 영욕으로 점철됐다. 초기부터 따라붙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란 불명예를 불식시키기 위해 숱하게 싸웠다. 9차례 한은법이 개정되면서 오늘의 위상에 이르렀다.
국가기관이면서 정부기구는 아닌 묘한 성격의 한은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란 이름의 기업 구조조정 재원 조달 방법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와 ‘금융 안정’이란 본연의 목적에만 충실할지, 실물경기를 적극적으로 살피는 쪽으로 정책 목표를 확대할지 기로에 섰다. ‘난색’에서 ‘역할 수행’으로 기울다가 다시 ‘고심’ 중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뼛속까지 한은맨’으로 불리는 이주열 총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나 더 이상의 혼선은 곤란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한마당-정진영] 한국은행
입력 2016-05-06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