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현 칼럼] 아내를 귀히 여기는 남편

입력 2016-05-06 18:29 수정 2016-05-06 20:30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에는 두 남녀에게 소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잘 보여준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24세의 여성 앨리스는 의사출신의 성공한 금융가로 뛰어난 비주얼의 외모를 가진 에릭과 평범한 외모를 가진 음향기술자인 필립을 만난다. 에릭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이지만 그에게 없는 단 한 가지는 소통의 능력이었다. 에릭은 매사에 충실하지만 진실한 감정이 묻어 있는 소통을 극도로 피했다.

앨리스는 에릭과 점점 만날수록 대화가 되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장벽이 놓여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필립은 앨리스의 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여주고 그녀가 속에 있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끔 이끌어 주었다. 앨리스는 필립과 함께 있으면 공감 받고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소설은 과연 앨리스는 모든 것을 갖춘 남자이지만 소통이 불가능한 에릭과 모든 것을 갖춘 남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소통이 가능한 필립, 두 남자 중에 누구를 선택할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는 “남편들아…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 여기서 왜 남편들이 아내를 귀히 여겨야할지 이유를 설명한다. 주님은 자신의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주님과의 소통의 도구인 기도가 놀랍게도 아내와의 관계로도 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아내와의 소통의 단절은 주님과의 소통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씀이다.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이 자기를 귀히 여긴다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 그것은 아마도 남편과 진심으로 소통이 된다고 여기는 순간일 것이다. 아내가 남편과 말을 하고 싶어 할 때, 차갑게 “나 피곤해 나중에 이야기해”라며 대화를 거부하는 남편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내에게 사랑의 다른 말은 공감이다.

정민 교수의 ‘책 읽는 소리’를 보면 조선시대에 소설책은 중요한 혼수품이었다. 조선시대는 출판이 국가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기에 고전소설의 대부분은 인쇄가 아닌 붓으로 직접 필사됐다. 정민 교수는 ‘임경업전’과 관련해 필사기 한 편을 소개한다. 아우가 혼인을 해 처음으로 친정에 올 수 있었던 딸이 집에 있던 소설책을 베껴 써서 시댁으로 가져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소설의 분량이 길어 미처 절반도 못 끝내고 딸은 시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딸이 미처 쓰지 못한 부분을 베끼려다 여의치 않자 조카를 동원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글씨체가 마땅치 않아서 또 다른 자식을 시켜 이어 쓰게 했다. 다 완성이 돼갈 즈음, 어린 조카아이가 자신도 필적을 남기겠다고 우겨 빼뚤빼뚤 서툰 글씨로 나머지 한 장을 채웠다. 이렇게 해 온 가족이 총동원된 필사본이 마침내 완성됐다. 아버지는 책을 딸에게 보내면서 책의 여백에 편지를 대신해 한 마디를 더 첨가했다.

“아비가 그리울 때 보아라.”

아버지의 감독 속에서 온 가족이 총동원돼 필사한 책을 보던 딸이 아버지의 추신을 읽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버지가 딸을 생각하는 따뜻함은 쉽지 않은 시집살이에서 식지 않는 마음의 손난로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 마음에 응답을 하였다. 바로 역지사지이다. 가부장적이며 남존여비의 사회로 알았던 조선시대에도 따뜻한 가족 간의 사랑은 분명히 존재했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상대방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전해야 지속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소통’이라고 한다고 말한다.

골로새서 3장 19절은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고 한다. 남편의 사랑은 단지 로맨틱한 감정의 덩어리가 아니라, 아내에게는 사랑은 소통이며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단지 낭만적인 감정에서가 아닌 바로 소통의 과정을 통해서이다. 아내는 소통을 통한 사랑을 받을 때 자기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다. 아내는 남편이 도저히 자기의 마음을 알아 줄 수도 없고 그리고 소통할 수 있는 기본적인 모뎀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시원하게 소통할 수 있는 와이파이존이 그에게는 없다고 느낄 경우, 이것은 단순히 아내와의 문제가 아닌 또 다른 오히려 더 큰 소통의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최광현 <한세대 심리상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