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는 지난해 10월 팀 리빌딩을 단행했다. 14년째 넘지 못한 포스트시즌의 문턱. 더는 기다릴 수는 없었다. 시애틀보다 오랜 시간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한 팀은 이제 메이저리그에 남지 않았다. 시애틀은 가장 먼저 잭 쥬렌식 단장과 로이드 맥클렌던 감독을 해임했다.
신임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다. LA 에인절스 선수단을 이끈 제리 디포토를 단장으로 영입했다. 이 과정에서 에인절스의 부단장으로서 디포토를 보좌했던 스캇 서비스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서비스 감독은 즉각 선수단을 재편했다. 40인 로스터에서 마운드부터 타선까지 절반 가까이를 갈아엎었다.
1루수에 도입한 플래툰시스템은 리빌딩의 핵심이었다. 플래툰시스템은 비슷한 기량의 선수 2∼3명을 번갈아 활용해 전력 안정성을 높이고, 주전 경쟁을 유발해 개인 기량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선수의 입장에선 ‘반쪽짜리’란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다. 하지만 선수단을 기록에 따라 구성하는 ‘사이버매트릭스’ 신봉자들인 디포토 단장과 서비스 감독은 냉정할 만큼 철저하게 이를 실천했다.
서비스 감독은 사령탑 부임 한 달 만에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영입한 애덤 린드, 2012년 메이저리그 최고 유망주로 불렸던 헤수스 몬테로를 플래툰 파트너로 붙였다.
이대호가 린드와 몬테로의 피 말리는 경쟁 속으로 들어간 시기는 메이저리그 개막을 두 달 앞둔 지난 2월이었다. 이대호는 1년간 400만 달러(46억여원)의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시애틀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단에 합류했다. 돈보다는 꿈을 좇은 도전. 이대호는 절대로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포기한 플래툰 시스템 희생자는 헤수스였다. 지난달 5일 개막전 40인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하고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떠났다. 시애틀은 이대호와 린드를 플래툰 파트너로 붙인 1루수 전력을 구성하고 메이저리그 페넌트레이스에 돌입했다.
서비스 감독이 선호한 쪽은 린드였다. 2006년부터 9시즌 동안 토론토의 주전으로 활약했고, 지난해 밀워키에서 502타수 139안타(20홈런) 타율 0.277을 기록하며 안정적으로 활약한 린드보다 메이저리그에서 검증한 적이 없는 이대호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서비스 감독에겐 ‘이대호가 우완투수에게 약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이대호는 주로 대타였다. 선발로 출전해도 하위 타순이었다. 하지만 묵묵하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지난달 14일 텍사스 레인저스 홈경기에선 연장 10회 대타로 출전해 끝내기 투런 홈런까지 때렸다. 그렇게 서비스 감독의 눈도장을 찍으면서 출전 기회를 늘렸다.
그리고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와 원정경기를 가진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오코콜리세움. 이대호는 8번 타자로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해 연타석 홈런을 때렸다.
이대호는 6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오클랜드 두 번째 투수 라이언 덜의 146㎞짜리 포심 패스트볼 초구를 때려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다음 타석인 7회초 2사 2루에서 세 번째 투수 존 액스포스의 시속 153㎞짜리 강속구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을 넘겼다. 그렇게 4타수 2안타(2홈런) 3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특히 7회 투런 홈런은 시애틀이 9대 8로 역전승한 이 경기의 결승타였다. 이대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승리의 주인공이었다.
이대호는 플래툰시스템을 뚫고 상위 타선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미국 CBS 스포츠는 이대호의 활약상을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타순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충분해졌다”고 평했다. 이대호가 지금까지 15경기에서 기록한 타율은 0.281. 32타수 9안타(4홈런)다. 대부분 주전으로 출전해, 23경기에서 74타수 17안타(1홈런) 타율 0.230을 작성한 린드를 홈런과 타율에서 압도하고 있다.
우완투수에게 약하다는 서비스 감독의 분석도 빗나갔다. 이대호는 지금까지 좌완을 상대로 20타수 5안타(2홈런) 3타점 타율 0.250, 우완을 상대로 12타수 4안타(2홈런) 3타점 타율 0.333을 기록 중이다. 홈런과 타점은 같고, 8타수 덜 만난 우완을 상대했을 때 타율이 높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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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06 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