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선업 등 구조조정 앞서 일자리 나누기 협약부터

입력 2016-05-05 19:16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를 신속하게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금융업계에 혈세를 투입하면서 단행한 양적 구조조정은 수많은 실직자를 양산했으면서도 생산성의 질적 도약은 이루지 못한 채 업계의 평균임금만 상승시켜 놓았다. 임금을 삭감하고, 해고 규모를 최소화했어야 했다는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 금융업계의 고임금은 임금체계와 노동시장구조 개혁의 큰 걸림돌이다

조선업 등 위기에 처한 한계업종에서 소리도 못 내는 약자들부터 자르고 보는 구조조정이 벌써 시작됐다. 비정규직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업계는 특히 그 비율이 60∼70%로 매우 높다. 세계 1위의 한국 조선업을 키운 공신 가운데 힘들고, 위험한 저임금의 일을 감내한 하청 노동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경영진과 정규직 노조는 위험 작업에 주로 사내하청, 재하청 업체들을 활용해 왔다. 그러면서 위기 상황에 처한 지금 비정규직들을 우선 해고에 내몰면서 자기 몫 챙기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경영진에게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주는 것은 의사결정 권한과 함께 의사결정의 결과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라는 의무를 떠안기는 것이다. 즉 비정규직 우선 해고에 앞서 고임금 임원진의 임금반납 결의부터 나와야 정상이다. 또한 노조로 뭉친 정규직들이 비정규직들보다 많은 임금과 권한을 누리고 있는 만큼 위기가 닥쳤을 때 임금삭감 등 고통을 나누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마침 전경련도 최근 야근과 특근을 없애고 신규 고용을 늘린 CJ제일제당 부산공장과 고려제강, LG실트론 등 대기업의 일자리 나누기 사례를 발표했다. 조선·철강 등 한계업종의 사용자 단체와 금속노조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자리 나누기 협약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도 이를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경제공약을 총괄한 최운열 당선인도 “인원 구조조정뿐 아니라 임금 구조조정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2009년 도산위기의 GM에 희망퇴직 지원금을 포함한 500억 달러의 구조조정 비용을 집행하기 앞서 GM노조의 임금 삭감 결정을 이끌어 냈다.

정부의 구조조정 논의는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인원 감축을 어느 정도로 최소화할 수 있는지, 임금 삭감 폭에 비추어 기업 소유자들의 부담을 어느 정도로 할지가 먼저 정해져야 한다. 이후 정부가 재취업지원금 등 실업대책을 포함해 기업 회생에 필요한 구제자금 규모를 산정하고, 실탄(자금)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게 순서다. 정부는 한국은행에 실탄을 내놓으라는 요구부터 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힘없는 비정규직들만 먼저 희생시켜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