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남중] 좋은 놀이터 하나 없는 사회

입력 2016-05-05 19:05

때로는 댓글이 기사를 완성한다. 최근 보도한 ‘순천시의 통 큰 어린이날 선물, 기적의놀이터’ 기사에 붙은 댓글들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파트엔 놀이터가 없어지고 재활용 쓰레기장이 만들어졌는데 정말 부럽네요. 아이들 데리고 순천까지 가야겠어요∼ㅠㅠ.”

“울 아들도 놀 수 있게 전국적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 요즘 놀이터는 어른이 봐도 심심해요.”

“우리 어릴 때 저런 별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놀았는데 정말 재밌었지….”

“이런 일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업적이죠.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를 구분하여 진정 아이들의 미래를 바라보는 방향을 제시한 순천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너무 부러워요 전국적으로 확대되길 간절히 기다려 봅니다∼∼. 우리 아이들 놀 곳! 마련해 주세요.”

“아이들은 흙에서 뒹굴고 물을 첨벙거리며 자연에서 뛰어노는 게 정답입니다. 4억원을 들여 만든 이 놀이터가 혁신적이라며 자랑거리가 된 지금이 참 마음 아프네요.”

순천시가 7일 개장하는 기적의놀이터를 소개한 이 기사에서 미처 쓰지 못한, 좋은 놀이터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이 댓글로 완성해주었다. 그렇다. 놀이터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교육만큼 중요하다고 한다. 놀이가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기적의놀이터 총괄 디자이너인 편해문씨가 스승이라고 소개하는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는 “온갖 가능성을 실험하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한계에 다가가고, 경험을 모으는 일이며, 어떤 지시도 받지 않고 교사 또는 감시자 없이 배우는 공부”라고 놀이를 정의한다.

그런데 아이들 교육에는 그토록 열정적인 한국에서 제대로 된 놀이터 하나 보기 어렵다. 전국에 6만여개나 된다는 공공 놀이터는 상당수 놀이터로서의 제 기능을 상실했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놀이터, 공터로 방치된 놀이터는 지금의 아이들이 교육과 놀이의 지독한 불균형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놀이터 하나 만들어주지 못하는 어른들이라면 그 어른들은 존경받을 만한 것일까. 놀이조차 사교육을 하듯 상업적인 실내 시설에서 해결해야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를 건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밖에서 놀지 못하고 방안에서, 실내 놀이시설에서, 대형마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놀이와 놀이터를 의제로 삼지 않는 우리의 지역자치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공공 놀이터의 현실은 이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기적의놀이터가 반가운 것은 그래도 우리 사회에 아이들의 놀이와 놀이터 문제를 고민하는 어른들이 몇 명쯤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을 오랜만에 봤다. 아이들이 북적거리며 활기차게 떠드는 소리가 동네를 얼마나 환하게 만드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순천에서 시작된 놀이터 이야기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 좋겠다. 동네마다 아파트단지마다 놀이터 혁신을 위한 모임과 회의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한강 둔치에도 멋진 놀이터들이 들어서면 좋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래놀이와 물놀이가 어디서나 가능했으면 좋겠다. 놀이 전문가나 놀이터 디자이너들이 많아지고, 놀이기구 제작자들도 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어른이라는 것이 조금은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 김남중 문화팀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