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집안에서 잠시 한눈팔던 사이 여섯 살짜리 손주는 집밖으로 나갔다. 보호자 없는 아이를 보고 동네 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 할아버지는 아동학대 및 방임 혐의로 지역 아동보호국으로부터 자세한 조사를 받은 뒤 의무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몇 해 전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 교포사회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는 아동 학대나 방임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거나 심지어 경찰에 구속까지 되는 사례들이 가끔씩 벌어진다.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아동학대·방임에 대한 우리 인식이 느슨한 탓이다.
폭력만이 학대가 아니다. 이를테면 폭력을 동반한 심한 부부싸움을 어린아이에게 노출시킨 것은 정서적 학대에 포함될 수 있다. 아동전문가들은 심약하고 미성숙한 아이가 부모의 거친 싸움을 보는 것은 어른이 전쟁 참화를 직접 목격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 주장한다. 주재원과 교포들이 많이 사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는 ‘어린이 보호지침(child supervision guidelines)’이란 게 있다. 지침에 따르면 7세 이하는 집안이든 놀이터든 차 안이든 무조건 혼자 두면 안 된다. 위반하면 경찰 이 조사할 수 있다. 8∼10세는 낮에는 혼자 있을 수 있지만 1시간30분 이상은 안 된다. 11∼12세는 3시간까지 가능, 하지만 늦은 밤이나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안 된다. 17세까지 규정돼 있다. 주마다 세부 기준은 다르지만 이런 지침은 지자체들이 시행하고 있다. 방임이나 정서적 학대도 심각한 범죄로 다뤄진다는 뜻이다.
엊그제 국가인권위가 지난해 11월 눈 내리는 영하 2.7도 날씨에 외투도 없이 얇은 단복만 입은 채 1시간 반 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 아이들(초등3∼중2)을 참여시킨 것과 관련해 아동인권 보호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아이들은 분명 어른들의 지시에 이의를 달거나 거부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추위에 떨었던 신체적 학대와는 별개로 명백한 정서적 학대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한마당-김명호] 아동학대
입력 2016-05-05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