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13만부가 팔렸다고 하는 책 ‘사피엔스’의 저자,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기술”이라며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권위의 원천이 인간에서 기계로 옮겨가면서 인류가 운명의 조종간을 빼앗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앞으로 30년, 40년 후엔 인공지능이 다는 아니어도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몰아낼 것이고, 기술을 지배하는 극소수 엘리트가 세상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게 점점 더 쉬워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19세기 산업혁명은 도시 프롤레타리아라는 새로운 사회계급을 낳았다. 21세기는 AI 혁명으로 다시 새로운 계급이 탄생할지 모른다. 이들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사회 번영에 기여하지 못한다. 수십억명의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게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가 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과 기술과학의 급격한 발전은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대부분 직업들이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고,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만이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기계가 일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노동의 미래, 노동의 의미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노동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오늘날 중요한 경제 문제의 하나는 어떻게 자본을 매개로 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 관계를 인간적인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환은 소외된 노동의 극복에서 가능합니다. 소외가 극복된 노동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소외되지 않은 노동, 즉 자기 동일성의 실현으로서의 노동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이기심의 충족과 벌거벗은 경쟁이 아닌 협동과 공동 참여에 기초한 노동으로,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지배와 착취에서 돌봄과 공존에 기초한 노동의 실현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성서는 우리에게 소외되지 않은 노동 이해의 단서를 제시합니다. 성서에 따르면 경제적 활동의 기초인 노동은 타락 이전의 창조 질서의 본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창조의 질서 안에서 노동하도록 부름 받았고, 노동은 야훼의 창조를 책임적으로 보호하고 가꾸는 데 그 목적을 가집니다(창 2:15, 2:5). 야훼는 창조 질서의 유지와 돌봄을 위해 파트너를 만드셨고(창 2:21∼25), 이로써 창조의 돌봄은 ‘일부 사람들’만의 과제가 아닌 ‘사람 모두’의 과제가 됩니다. 노동을 표현하는 구약성서의 두 개념, 곧 ‘아보다’(aboda·봉사에서 유래)와 ‘멜라카’(melaka·보내심에서 유래)는 노동이 야훼 하나님에 대한 봉사로서 이해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서의 노동은 신적 위임의 성취로서 파악된다는 점에서 노동을 ‘자연의 질서’ ‘숙명’ ‘고통’으로 이해하는 그리스 세계의 노동관과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봉사로서 이해되는 노동은 강요된 필연적인 자연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의 표현입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동역자로서 인간이 참여하는 것인데, 이 참여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에 위임되었다는 사실이 간과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이들에 대한 책임도 그 개인에게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곧 공동체에 있는 것입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일하는 근로자들과 특별히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 노동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키고 가꾸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과제입니다.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
[바이블 시론-채수일] 노동의 미래, 미래의 노동
입력 2016-05-05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