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심이’(1990)의 오영심 역으로 아역배우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 이혜근(42). 세상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았던 청년의 때를 보냈지만 한편으로 하나님과는 멀어져 있는 시간이었다. 그가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감사를 고백하기까지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최근 서울 언주로 윤당아트홀에서 뮤지컬 ‘헬로 마마’ 연습에 바쁜 이혜근을 만났다. 큰 눈망울에 여전한 ‘동안미모’가 빛났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익숙했던 새침한 여고생 이미지를 기대했다. 선입견이었다. 차분하고 너그러웠다.
이혜근은 담담히 지난시간을 회상했다. 그는 “유치원 때 동네에서 뛰어노는데 노랫소리가 들렸다”며 “심방하는 교인들이 부르는 찬양이었는데 기다렸다가 그분들을 붙잡고 우리 집에서도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가 그런 저를 보고 교회에 데리고 가셨다”고 말했다.
이혜근은 교회에서 아름다운 찬양에 더 빠져들게 됐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성가대 활동을 시작했다. 노래를 잘했던 이혜근은 성탄절 등 교회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대에 서게 됐다. 그러다 한 교인이 MBC 어린이합창단에 응시할 것을 권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오디션을 보고 바로 합격했다. 2년 동안 MBC 어린이합창단에서 활동했다.
본격적으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탤런트 최불암 때문이었다. 최불암이 제작·출연하는 뮤지컬 ‘애니’(1985)에 이혜근이 발탁됐다. ‘애니’에는 윤석화 박상원 남경주 등 쟁쟁한 스타들이 출연했다. 이혜근은 ‘애니’를 시작으로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와 춤까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애니’ 출연 이후 전성기가 열렸다. ‘호랑이 선생님’ ‘꾸러기’ ‘영심이’ ‘울밑에 선 봉선화’ 등에 출연했다. 이미연 채시라 등 스타를 배출한 ‘미스롯데’의 동상 트로피도 거머쥐었다. 당시 찍은 CF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한다.
하지만 바쁜 스케줄로 인해 교회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뮤지컬에 이어 드라마, 그리고 영화와 CF까지 승승장구했지만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저를 계속 세워주셨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촬영을 핑계로 주일을 못 지키게 됐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8년의 시간이 지나 있더라고요.”
이혜근에게 연단의 시기가 찾아왔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감이 몰아쳤다. 성인 배우로 변화를 꾀해야 할 시점에 어려보이는 외모 때문에 캐스팅이 어려워졌다. 그 상황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경황이 없었다. 문제는 결혼 후에 더욱 심각해졌다.
그는 “TV에 안 나오니까 활동을 왜 안 하느냐고 묻는 분도 많았고 아이까지 낳으니 우울감이 바닥을 쳤다”며 “이러다 내가 잊혀지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고 말했다. 남편의 사업도 출산 전후로 힘들어졌다.
“아파트 16층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무섭다는 생각보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자유로워질 것 같다는 심정이었어요. 그때 부모님의 얼굴도 아닌 하나님이 떠올랐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마침 그 주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전도주간이라며 이혜근에게 교회에 같이 갈 것을 권했다. 이혜근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인 듯하다고 했다.
“주일 말씀이 방황하는 양을 기다리는 예수님의 이야기였어요. 하나님은 우릴 떠나지 않으셨고 내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요.”
그 일이 있었던 2010년도부터 이혜근은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경기도 하남교회(방성일 목사)를 섬기고 있고 찬양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예전엔 노래의 음이 좋아서 따라 부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요. 더 겸손하고 진솔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고요. 어릴 때 순수한 마음 그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요.”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
영화 ‘영심이’ 주연 이혜근, 뮤지컬 배우로 변신 “방황하는 양 불러주셨어요… 연기로 찬양”
입력 2016-05-06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