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 경남 의령에서 만취 순경이 주민을 무차별 사살하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동료 경찰과 우체국 직원, 산골 마을 주민 등 6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30여명이 다쳤다.
소설가 김경욱(45)의 7번째 장편 ‘개와 늑대의 시간’(문학과지성사)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러나 이제는 잊혀진 그 ‘우 순경 사건’을 소재로 한다. 작가는 장기 미제 사건에 덤벼든 프로파일러처럼, 사실성의 씨줄에 개연성의 날줄을 엮어가며 비극의 진실을 추적해 간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에게 물었다. 그가 밝혀낸 비극의 실체는 무엇인가.
“3년 전 미국 아이오와국제작가축제 참석 차 아이오와대학에 체류 중일 때 총기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 나라에서 총기 사건은 흔하지만 현지에서 접하니 실감이 달랐어요. 자연스럽게 제 어릴 적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이 떠올랐지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피해자가 날 수 있었을까. 그는 그런 궁금증을 갖고 당시 신문을 검색했고, 우 순경 사건이 단순히 반사회적 인물이 저지른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회 부조리, 관료주의, 냉전 이데올로기 등 온갖 모순이 응축된 결과라는 것이다. 휴대하기 간편하고 연발이 가능한 카빈 소총이 아니었다면, 그 총을 들고 나타난 우 순경이 버젓이 한 ‘무장공비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마을 사람들이 믿고 ‘우리 좀 지켜달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잃을까 겁이 난 경찰들이 일부러 늑장 출동하지 않았더라면….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참사의 이면에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소련에 맞서기 위해 급박하게 개발한 카빈 소총이, 남북 대치 상황이 낳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민중의 지팡이 경찰의 보신주의가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없고 서글픈 사건이어서 희생자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식은 블랙 유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 그래도 블랙 유머에 능한 그는 이번 소설에서는 더욱 의식적으로 이를 활용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헛웃음이 나면서도 묘한 슬픔이 밀고 간다.
유머가 빛나는 건 이야기의 디테일, 정확히는 상상력의 디테일 덕분일 터다. 그는 사건의 얼개와 몇몇 등장인물만 가져왔다. 그들의 구체적 삶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타인의 아픔에 민감한 공감 능력을 가졌던 박만길, ‘아들 잡아먹는 딸년’이라며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백부 손에서 길러졌던 손미자,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부부 동반 제주도 꽃구경에 부풀었던 마을 사람들 등의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는 소설 속 손미자의 아버지가 자개 농 공장에서 일하며 딸을 위해 만들어준 빨간 부엉이 인형이 왜 빨간색이냐고 트집 잡는 경찰의 모습 같은 자잘한 에피소드가 촘촘히 받쳐준다. 이는 취재의 산물이다.
소설 제목 ‘개와 늑대의 시간’은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서 저녁 무렵을 뜻하는 시간이다. 어둑해지면 저기 오는 것이 개(동지)인지 늑대(적)인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순경이 개인지 늑대인지 모호했던 그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작가들이 개인적 문제에, 문체주의에 빠져 있는 시대라 사회 문제를 건드리는 그의 소설은 귀하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개와 늑대의 시간] 비극의 희생자들 블랙유머로 위로하다
입력 2016-05-05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