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고요’ ‘참 나 왜 그러냐고요’ 등 잇단 유행어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행사 섭외가 줄을 이었다. 대우는 좋았다. 골든타임에 나를 DJ로 고용하는 나이트클럽도 있었다.
나이트클럽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술을 먹고 춤만 추는 곳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녀간에 만남, 즉 ‘부킹’이 만연했다. 하지만 내겐 먼나라 얘기였다. 나와 부킹하자는 여자는 없었다. 못생기고 깡마른 남자는 싫었던 모양이다. 씁쓸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밤업소를 자그마치 7군데나 다녔다. 정신없이 다녔지만 남는 것은 없었다. 카드 도박에 번 돈을 탕진하고 술과 담배에 찌들었기 때문이다. 매니저와 기사 월급을 주고나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
밤업소 생활에 에피소드가 많다. 한번은 술 취한 손님이 내 뒤로 와 나의 주요 부분을 세게 잡아 당겼다.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잡아당긴 이유를 나중에 물어보니 “열혈 팬”이란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거기가 무척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 날, 나이트클럽에서 DJ를 보는데 한 손님이 내게 10원짜리 동전을 세게 던졌다. 그런데 내 옆에 있던 DJ 보조가 동전에 맞았다.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이 출동했고 나는 증인으로 파출소에 갔다. 경찰이 그 손님에게 왜 동전을 던졌느냐고 물었다. 그 손님은 “배영만 얼굴이 너무 작아 동전으로 맞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참 나 인생 별난 놈 다 있구나’ 생각했다.
밤무대에 계속 출연하려면 열심히 일해야 했다. 이름이 어느 정도 있으니 다행이지, 이름 없는 무명 연예인들은 대접이 형편없었다. 특히 무명의 여자 연예인들은 술자리 손님이 부르면 가야 했다. 가지 않으려 버티다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다. 밤업소 관리자들은 무명의 여자 연예인이 술자리에 가지 않으면 욕을 해댔다.
“너도 연예인이냐. 꼴값 하네. 우리가 돈 많이 주잖아….”
협박과 회유가 난무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팠다. 팁을 받고 울고 있는 무명의 여자 연예인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밤업소 등에서 번 돈으로 집사람에게 비디오가게를 차려줬다. 집사람은 무척이나 알뜰했다. 옷도 잘 안 사 입었다. 돈을 갖다 주면 꼬박꼬박 적금을 붓는 그런 여자였다. 덕분에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어느 날 집사람에게 급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이곳의 땅을 파라”고 해 삽으로 땅을 팠다. 그런데 그곳에 녹슨 동전 3400만원이 비닐로 싸여 있었다. 이건 뭐지? 나한테 시집 와서 지금까지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동전이란다.
은행에 동전을 들고 갔더니 은행 직원이 물로 씻어 오라고 했다. 집에서 동전을 깨끗이 씻으며 울었다. 집사람에게 고생만 시켰다는 자책감이었다.
집사람은 하는 일마다 성공했다. 반면 나는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집사람의 말을 무시할 때가 많았다. 집사람이 경기도 파주 땅을 사자고 했을 때도 만류했다. 나는 건물을 짓자고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이후 파주 땅값은 크게 올랐다. 아마 그때 집사람의 말을 잘 들었다면 지금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준 부자는 되어 있으리라.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역경의 열매] 배영만 <5> 밤업소 정신없이 뛰었지만 ‘남는 것 없는 장사’
입력 2016-05-05 19:02 수정 2016-05-05 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