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을 집중 분석한 결과 전형적인 데마고그(demagogue·선동가)라고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데마고그는 이성보다 감정과 편견에 호소해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정치가를 가리킨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NYT는 지난 한 주 동안 트럼프가 한 인터뷰, 언론 회견, 유세장 연설 등 9만5000개 단어를 정치심리학자·역사가와 함께 분석했다.
트럼프 발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그가 ‘우리(we)’와 ‘그들(they)’로 편을 가른 뒤 ‘그들’에 대해 가혹한 말과 폭력적인 이미지를 반복해서 드러낸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변화하는 미국 사회와 경제에 불안, 불만을 느끼는 청중이고 ‘그들’은 무슬림, 이민자이거나 트럼프의 정적이다.
일리노이대학교의 정치심리학자 맷 모틸 교수는 “‘우리 대 그들’로 분리하면 악(惡)이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무지한 ‘그들’에게 위협을 느낀 ‘우리’는 이 위협을 경감해줄 후보를 원하게 되는 ‘위협 기제’가 작동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NYT는 트럼프에게 ‘우리’는 선이고 ‘그들’은 악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의 발언에서 발견되는 다른 패턴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상황보다는 사람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정적이나 외국 지도자 등을 ‘멍청이’ ‘끔찍하다’ ‘약해빠졌다’ 등으로 지칭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그의 연설에서 ‘죽이다’ ‘파괴하다’ ‘싸우다’ 등의 단어와 결합해 폭력이 빈번히 어른거리는 것도 특징이다. 트럼프는 이슬람국가(IS)가 거론될 때면 ‘목을 자르다’라는 구절을 되풀이하며, 미국의 적들을 물고문보다 더 가혹하게 고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언과 루머 등에 의존해 기존에 입증된 사실이나 통계 수치, 정부기관과 뉴스매체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도 특징이다. 미국 내 불법이민자의 국적별 현황과 건강보험개혁법 시행 후 보험료 증가율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정부 통계가 공표돼 있음에도 그는 유세장에서 “그 누구도 모른다”고 강변한다.
역사학자와 정치학자, 심리학자들은 이성보다 감정적 고양에 의존하는 트럼프의 이런 수사적 양식은 정치가 조지프 매카시, 조지 월레스, 팻 뷰캐넌, 배리 골드워터 등의 전통과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매카시는 1950년대 미 정부기관 곳곳에 사회주의자들이 퍼져 있다며 ‘빨갱이 사냥’을 주창한 상원의원으로 매카시즘이라는 말은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월레스는 전 앨라배마 주지사로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뷰캐넌은 1992년 이후 세 차례 대선에 출마한 보수 논객으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치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트럼프가 지난 세기의 ‘선동가 선배’들과 다른 점은 청중을 즐겁게 하고 그들의 환심을 살 줄 아는 정력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연설가라는 점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격식 없고 자신감 있는 무대 매너에 대중들이 트럼프에게 더 끌린다는 점이 무섭다는 것이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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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트럼프, we 對 they 편가르기”
입력 2016-05-04 18:13 수정 2016-05-05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