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구절이 있다. 그만큼 발전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과 아픔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프로야구에선 만년 유망주로 불리던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랜 시간 자신 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와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선수들이 그 ‘알’을 깨고 마침내 세상에서 빛을 보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롯데 자이언츠 김문호와 두산 베어스의 오재일이다.
김문호는 고교시절 최고의 타자였다. 2004년 가을 덕수정보고 2학년 때 황금사자기와 화랑대기에서 모두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정확성과 파워, 기동력까지 겸비한 만능 타자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 신일고 김현수, 광주제일고 강정호와 함께 고교 타자랭킹 1위를 다툴 정도였다.
그렇게 김문호는 2006년 롯데에 계약금 1억2000만원을 받고 입단했다. 구단과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신인 드래프트 당시 롯데가 김문호와 김현수를 놓고 고민하다 김문호를 뽑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데뷔 첫 해 단 8경기 출장에 그쳤다. 김주찬과 손아섭, 전준우 등이 버티는 외야 자리에서 그는 항상 백업이었다. 2008년 군에 입대해 제대한 후에도 별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약한 수비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더 이상 설 곳이 없는 낭떠러지로 내몰렸다.
이 때 김문호는 처절하게 자신을 반성했다. 고교시절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김문호는 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교시절 팀과 동료들의 실력이 뛰어났기에 내가 과대평가를 받은 것”이라며 “내 실력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술회했다.
이후 특타를 자청할 정도로 맹훈을 거듭한 김문호는 2012년 데뷔 후 처음으로 50경기 이상(56경기)을 소화했다. 하지만 다른 액운이 닥쳤다. 바로 부상이었다. 2013년 5월 발목 인대 파열로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은 김문호는 입단 10년차인 지난해 ‘홈런왕’ 장종훈 코치를 만나면서부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장 코치는 김문호의 타격폼 수정을 시도했다. 상체가 앞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랬더니 놀랄 만큼 성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김문호는 3할(0.306)을 때려냈다. 시즌 중반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지만 가장 많은 93경기에 출장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완쾌된 김문호는 다시 장 코치와 함께 스프링캠프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당겨 치는 것보다 밀어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다. 새로 부임한 조원우 감독도 그의 재능을 보고 많은 기회를 줬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3일 현재 김문호의 타율은 무려 0.419나 된다. 이 부문 1위다. 최다안타(39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김문호는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나도 못 믿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감이 붙었다. 감독님이 시합 때 부담 갖지 말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된다고 다독인다”고 소개했다.
백업의 설움과 숱한 부상을 이겨낸 김문호는 겸손하다. 그는 “아직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풀 타임 소화가 목표”라며 “항상 꾸준하고 열심히 하는 타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두산 오재일도 뒤늦게 빛을 본 선수다. 야탑고 시절 차세대 거포로 주목받은 오재일은 2005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세기가 부족해 결정적인 순간 헛스윙 삼진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2012년 당시 그를 눈여겨 본 김진욱 두산 감독이 그를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두산으로선 오재일의 장타력이 매력적이었다.
이제 프로 12년차인 그는 스프링캠프에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타격 매커니즘을 찾기 위해 집중적인 훈련을 이어갔다. 결국 오재일은 주전 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했다. 또 한층 정교해진 타격으로 두산의 선두 질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재일의 타율은 0.400나 된다. 김문호에 이어 2위다. OPS(장타율+출루율)는 1.131로 1위에 올라있다. 오재일은 “정말 어렵게 기회를 잡았다.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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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05 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