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놀이·물놀이… 맨발로 뛰노는 첫 ‘혁신형 놀이터’

입력 2016-05-04 21:29 수정 2016-05-05 04:00
아이들에겐 물과 모래가 최고다. 전남 순천시 연향동에 7일 문을 여는 국내 첫 혁신형 놀이터인 ‘기적의놀이터’에서 지난 2일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있다. 작은 사진은 놀이터 전경. 디자이너 편해문 제공

오는 7일 전남 순천시에 ‘기적의놀이터’가 문을 연다. 국내 최초의 혁신형 어린이 놀이터다. 놀이기구가 없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기적의놀이터를 지난 2일 둘러봤다.

순천시 연향2지구 아파트 단지들 사이 공터에 놀이터가 자리해 있다. 놀이터 전면은 차도에, 후면은 야산에 이어져 있다. 아직 정식 개장도 안했는데 오후의 놀이터에는 벌써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노는 아이들 상당수가 맨발이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장난을 하던 여자 아이가 소리친다. “언니도 해봐. 정말 재미있어.” 맨발로 노는 아이들이라니,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놀이터 바닥은 흙이다. 어디서고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은 보이지 않는다. 놀이터 한 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백사장 모래를 깔아 모래놀이장을 만들어 놓았고, 그 안에 6m쯤 되는 나무둥치 하나를 들여놓았을 뿐이다.

모래놀이장은 겉에서 보면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깔 모래를 확정하기 위해 다섯 차례나 가져온 모래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모래 깊이도 1m가 넘어서 아이들이 끝없이 파낼 수 있다. 나무데크가 모래놀이장 안으로 이어진 것도 눈길을 끈다. 장애 아동들이 휠체어를 타고 와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물놀이장은 놀이터 둘레의 절반 정도에 좁은 수로를 내고 물이 흐르게 한 뒤 그 안에 조약돌을 깔아 놓은 수준이지만 아이들에겐 인기 최고였다. 기적의놀이터 설계에는 동네 주민과 아이들도 참여했는데, 아이들이 주문한 게 바로 물놀이였다.

아이들이 또 하나 요구한 것은 미끄럼틀이었다. 애초에 놀이기구 없는 놀이터를 만들려던 계획은 미끄럼틀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아이들 목소리 때문에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국내에서 가장 길고 좋은 미끄럼틀을 만들기로 했다. 스틸 재질로 20m 길이의 원통형 미끄럼틀을 제작해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도록 땅에 묻었다. 총사업비 4억원 중 1억원을 미끄럼틀 제작에 사용했다.

놀이터 주변에는 나무데크로 길게 의자를 깔아 놓았다.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다. 가만히 보면 어른들이 앉는 나무데크와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 사이가 낮은 벽 등으로 슬쩍 가로막혀 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부모가 곁에서 지켜보고 간섭하면 아이들이 맘대로 놀지 못한다. 또 부모들이 머무르고 싶은 놀이터가 돼야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다.

기적의놀이터 총괄 디자이너 편해문(47)씨는 20년 넘게 놀이 운동가로, 놀이터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에게 놀이와 놀이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외쳐왔다. 조충훈 순천시장은 2003년 국내 최초의 어린이전문도서관인 ‘기적의도서관’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국내에는 6만여개의 공공 놀이터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놀이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적의놀이터는 한국에서 공공 놀이터의 혁신을 알리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순천시는 앞으로 5년 내에 10곳의 기적의놀이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순천=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