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창호] 야구로 본 박근혜식 정치

입력 2016-05-04 18:53 수정 2016-05-04 19:08

프로스포츠 가운데 유독 야구는 감독을 헤드코치(Head Coach)가 아닌 매니저라 부른다.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 중 우두머리가 아니라 팀을 총지휘하는 리더란 뜻이다.

팀이 승승장구할 때도 야구 감독은 빈 구멍이 어딘지를 살피며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팀의 자산은 무엇이고, 예산은 얼마이며,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승패에 집착해 무조건 이기는 게 능사가 아닌 직업이기도 하다. 한 시즌이 아니라 수많은 시즌을 이겨 명문팀을 만들 때 비로소 ‘명장’ 소리를 듣는다.

보수여권의 대표 정치인이자 정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을 야구의 눈으로 보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은 이제 집권한 지 3년을 훌쩍 넘어 채 2년의 임기도 남겨두지 않았다. 야구로 치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앞둔 감독의 심정일 것이다. 정치의 가을 야구야 뭐니 뭐니 해도 집권 세력의 정권 재창출이다. 정권 재창출의 필요충분조건은 국민의 지지다. 그리고 집권여당과의 팀워크, 이를 통한 야권 반발의 최소화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게 작동하려면 업적이 있어야 한다. 그게 있어야 국민의 지지도 받고, 야당의 반대도 뚫고 여당 정치인을 한 울타리에 결집시킬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일궈놓은 업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선후보 시절 공약(公約)이었던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한 공약(空約)으로 드러났다. 재벌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집권 첫해 내세웠던 공직사회의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도 별로 된 게 없어 보인다. 노동개혁도 국회 입법마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경제가 좋아지지도 않았다. 뒤늦게 ‘한국형 양적완화’카드를 꺼냈는데, 알고 보니 분식회계로 점철된 대표적 부실기업군인 조선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한 방편이었다. 시중에 돈이 풀려 소비가 늘어나고, 전체 경기에 따뜻한 온수를 공급하는 목적이 아닌 것이다.

민심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은 20대 총선의 집권여당 참패로 드러났다. ‘배신의 정치’를 하던 여당 정치인들을 공천 배제하고, 박 대통령을 ‘진실하게 따르던 사람들(진박·진실한 친박근혜)’을 출마시켜 얻은 결과였다. 보수여당에서 ‘개혁적 보수’를 빼버리자 국민들은 온건진보 세력을 선택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인이다. 지장(智將) 덕장(德將)이라기 보다 용장(勇將)에 가깝다. 묵묵하게 자신만을 따르는 선수를 중용하는 야구 감독인 셈이다. 용장은 팀이 최악의 상황일 때 통한다. 팀원이 사분오열할 때 감독의 사자후(獅子吼)는 위력을 발휘한다.

반대로 팀이 최고의 상태일 때 용장은 되레 해악이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선수를 싫어하고, 지략이 앞서는 코치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의 팀이 더 잘하기 위해선 반드시 창조적인 구성원이 필요하다. 감독이 생각지도 못한 플레이로 관중을 열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서 보수 세력은 그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8년 집권한 이후 한때 야당보다 먼저 누진세 도입과 경제민주화 공약을 선점했다. 바로 박 대통령이 진두지휘했던 2012년 19대 총선에서다.

지금은 어떤가. 보수여당 안에서 이런 목소리는 사그라진 지 오래다. 이유는 대통령이 싫어하니까.

이제 집권보수 세력은 1점차 패배를 앞두고 9회말 공격에 나서는 절체절명의 야구팀 같다. 감독이 자기가 싫어한다고 정말 잘 치는 타자를 버릴 때가 아니다. 번개 같은 작전을 내팽개칠 때가 아니다.

신창호 스포츠레저팀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