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사나운 전쟁이 그나마 우리에게 남긴 게 헌법 9조입니다.”
3일 일본 도쿄 고토구. 백발의 노인이 단상에 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101세를 맞은 전 아사히신문 종군기자 무노 다케지였다. “덕분에 일본 국민은 70년 동안 국내외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전쟁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이 길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제헌절에 해당하는 69주년 ‘헌법기념일’을 맞아 열린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5만 명이 집결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중·참 양원 각각 3분의 2)을 목표로 한 가운데 벌어진 시위다. NHK 방송은 따가운 햇살에 선글라스와 모자로 무장한 시위대가 집회 후 ‘미래는 우리의 것’ ‘LOVE 평화헌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도쿄 도심을 행진했다고 전했다.
시위에는 지난해 안보법 반대시위를 주도해 유명세를 탄 학생단체 실즈(SEALDs)의 선봉에 섰던 오쿠다 아키(23)도 참석해 목소리를 냈다. 오쿠다는 “주권자는 우리다. 이는 지난 70년 동안 부단한 노력을 통해 지켜온 사실”이라며 “(그렇기에) 헌법에 쓰여 있는 말 역시 우리의 것”이라고 외쳤다. 주최 측은 지난 3월 말 발효된 안보법 폐지를 요구하는 서명 1200만명분을 19일 정부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일본사회 여론도 평화헌법 수호 쪽으로 기울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69주년 헌법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헌법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55%로 지난해보다 7% 포인트 증가했다.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률은 37%로 지난해 43%에서 크게 줄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 중순에서 4월 하순까지 전국 유권자 2077명을 상대로 실시됐다.
‘전쟁포기’를 선언한 헌법 9조도 ‘바꾸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은 63%에서 68%로 증가한 반면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응답은 29%에서 27%로 낮아졌다.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전보장 관련법도 ‘반대한다’는 응답이 53%로 ‘찬성한다’고 답한 34%를 크게 웃돌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도쿄TV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전국 유권자 991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지금 헌법이 좋다’는 의견이 50%에 달했다. 이는 2004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같은 문항을 조사한 이후 최고 수치다.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40%로 신중론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NHK가 지난달 15일부터 사흘간 전국 유권자 1523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헌법 9조 개정을 반대하는 의견은 40%로 찬성(22%) 의견의 배에 가까웠다.
배병우 선임기자, 조효석 기자
“평화헌법 사수” 日 5만명 시위
입력 2016-05-03 23:40